[청세] #동물 #환경 #공존… 20대 ‘비건 문화’ 키워드
[청년이 본 세상] 20대 비건 문화, 인스타그램 통해 확산 “비거니즘으로 지속가능한 세계 꿈꾼다”
| 여성경제신문은 국민대학교 '뉴스문장실습 수업'(담당 허만섭 교수)과 함께 2022년 연중기획으로 '청년이 본 세상', 일명 '청세' 코너를 운영합니다. 청년의 눈으로 본, 그들이 겪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그들의 글로 담아내겠습니다.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2021년 '뉴스문장실습 수업'에 참여 학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기사에서 최저시급 등 기준이 되는 연도는 2020년인 점을 밝혀 둡니다.
건강상의 문제로 비건(vegan·채식주의자)이 된 사람들이 주를 이루던 기성세대와 달리, 동물 윤리와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젊은 세대들이 비건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비거니즘(veganism)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비거니즘은 동물을 착취해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동물권을 옹호하며 종차별에 반대하는 사상과 철학이다. 특히 코로나19와 잦은 기상이변 등으로 생태계를 파괴한 주체가 인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비거니즘의 필요성이 점점 대두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와 DMC미디어의 ‘소셜미디어 현황 및 전망’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SNS 이용률은 87%로 세계 평균의 약 1.8배를 기록, 국가별 순위로는 3위를 차지했다. 이에 더해 닐슨 코리아 클릭이 국내 SNS 월평균 이용자를 연령별로 조사한 결과, 20대가 가장 선호하는 SNS는 인스타그램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 기사는 SNS 사용량이 두드러지는 한국사회에서 2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과 비건 문화의 확산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필자는 인스타그램에 채식 관련 게시물을 올리거나 그 게시물을 소비하면서 공감하는 20대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자들에게 비거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위와 20대에서 비거니즘이 유행으로 자리 잡게 된 이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취재 결과 최근 젊은 세대에서 급격히 확산되는 비건 문화에 인스타그램이 기여했다는 것에 모두 동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비거니즘을 시작하기 위해선 많은 정보와 관심이 필요한데 이런 사람들에게 인스타그램이 백과사전 같은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비거니즘에 관심이 있는 20대에게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비건 인플루언서들은 연예인들만큼이나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소비자에게 따라 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취재원들은 비건 인플루언서들이 재밌고 신선한 콘텐츠로 비거니즘은 어렵고 맛없을 것이란 편견을 허물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보다 더 있어 보이게 포장하는 것이 인스타그램의 폐해라고 하지만, 비거니즘과 같이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의 도입에는 오히려 이런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었다. 인스타그램 속 예쁘게 담긴 건강하고 착한 밥상을 보며 누군가는 비거니즘에 한발 더 다가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거니즘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이 비건 인플루언서들이 만든 음식 사진을 우연히 접하고 호기심을 갖게 돼 비거니즘을 알게 되는 상황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인스타그램에서 확산되는 비건 문화의 원인은 △기능적 측면 △높은 접근성 △인플루언서의 영향 총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기능적 측면’
인스타그램 하단에는 돋보기 모양 아이콘의 ‘검색과 탐색 기능’이 존재한다. 이 기능은 게시물의 노출을 향상시키고, 각 게시물이 새로운 사용자들에게 다가가도록 한다. 검색 섹션엔 유사한 콘텐츠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해시태그’ 기능이 있다. 찾고자 하는 정보가 있다면 인스타그램 검색 창에서 키워드 앞에 ‘#’를 붙여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비건’을 단 게시물은 약 46만개이며, ‘#비건빵’, ‘#비건베이커리’를 단 게시물은 각각 약 18만개, 10만개이다. 취재원들 역시 비건카페나 식당을 찾을 때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 기능을 유용하게 사용한다고 한다.
검색 창 아래의 탐색 섹션엔 추천 게시물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추천 게시물은 사용자가 팔로우하는 사람, ‘좋아요’를 많이 받은 인기 게시물, 무작위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즉, 이 기능을 통해 인스타그램에서 비건을 검색해왔던 사람들은 점점 많은 비건 콘텐츠를 소비하고, 비거니즘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우연한 계기로 비건 관련 게시물을 접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화면을 아래로 잡아당기기만 하면 나타났던 게시물들이 사라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게시물들이 업데이트된다. 따라서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여러 분야의 다양한 게시물들을 빠른 속도로 소비할 수 있다.
박모 씨(21·여·경인교대 초등교육과)는 “인스타그램으로 여러 비거니즘 관련 해시태그를 팔로우하고 비건 식당, 카페들을 찾아보다 보니 직접 가게를 방문해 비거니즘을 실행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답했다.
강모 씨(21·여·경인교대 초등교육과)는 “인스타그램 속 정보들은 내가 선택하는 정보라기보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들, 특히 쉽고 빠른 정보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건에 대한 관심이 없었더라도 게시물을 접하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비건 문화를 수용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높은 접근성’
인스타그램에선 누구나 정보의 생산자가 될 수 있다. 각자의 개성대로 피드를 꾸밀 수도,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세상에 공개할 수도 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쉽게 공개하지 못했던 비거니즘에 대한 생각 역시, 자기 PR의 시대에 걸맞게 당당하게 공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강모 씨(21·여·경인교대 초등교육과)는 ‘살리다 프로젝트’라는 비건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제로웨이스트로 장을 보고, 채식 요리를 하며 비건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찍었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그 후부터 비건 식당에 갈 때마다 관련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했다. 그녀는 이런 행동에 대해 “채식이라고 하면 상추만 먹고 있을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건도 이렇게 맛있게 먹는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모 씨(21·여·덕성여대 국어국문학과)는 올해 5월 중순쯤 일주일간 ‘하루채식 챌린지’를 실행했다. 일주일 동안 락토 베지테리언(Lacto Vegetarian : 채식주의자 중 우유와 유제품까진 먹는 유형)을 체험하면서 인스타그램에 하루 세끼 식사를 게시했다. 주변인들이 자신의 게시물을 보고 비거니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고 한다.
다른 취재원들도 비건 식당, 카페를 방문했거나 비건 요리법으로 음식을 한 후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짧은 후기를 남긴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게시물을 보고 비건 식당, 카페에 대해 위치가 어디인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반면, 인스타그램에 음식 사진을 올리는 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시각도 있었다. 오모 씨(22·여·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는 “음식 사진을 올리는 행위 자체가 자랑의 의도겠지만 본질적으론 과식을 유발하는 행위인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 채식을 한다고 올리는 것이 또 다른 소비를 부추기는 건 아닐지 고민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인스타그램은 높은 접근성으로 자유로운 표현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여러 우려가 있는 만큼 표현 방식의 적절성에 대한 지속적 고민이 필요할 듯 보인다.
‘인플루언서의 영향’
김모 씨(20·여·경인교대 초등교육과)는 “빠르고 쉽게 정보를 접하는데 있어서 인스타그램은 최적화된 매체”라며 “비거니즘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진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비건 문화는 앞으로도 계속 확산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다른 취재원들도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비건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환경문제나 동물윤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비건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얻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20대 비건의 대표주자로서 공존과 공감의 세계를 꿈꾸는 고보(@govo_human)와의 서면 인터뷰 내용이다.
그녀는 비건을 지향한 지 햇수로 3년 차인 평범한 20대 회사원이자, 인스타그램에선 약 15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비건 인플루언서이다. 본명이 아닌 닉네임 ‘고보’로 활동하며 플라스틱 프리, 제로웨이스트를 표방하는 이야기·독서·요리 모임 ‘살리다 프로젝트’, 비건 초보를 위한 안내서인 만화 ‘비건 첫걸음’ 등을 운영, 연재하고 있다.
-언제, 어떤 경위로 비거니즘 관련 게시물을 업로드하기 시작하셨나요?
“비건 식당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스타그램으로 옮겨오게 되었어요. 저는 주변 시선과 건강 염려로 비건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쉽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들을 나누고 많은 사람들이 비건을 지향하길 바라는 마음에 작년 초 '비건 첫걸음'이라는 만화를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목적과 기대로 비건 관련 게시물을 게시하고 계신가요?
“비거니즘에 대한 정보 제공과 비건도 이렇게 잘 먹고 잘살고 있다는 걸 함께 보여주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이 비건 지향에 동참하기를 기대합니다.”
-비거니즘이 20대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다는 걸 실감한 적이 있으신가요?
“제가 업무 특성상 청년계층을 주로 만나는데 한 무리에 비건을 지향하고 채식을 하시는 분이 최소 한 분은 있더라고요. 그리고 비건을 지향하지 않는 분들도 비건이 무슨 뜻인 줄은 대략 알고 계셔서 몇 년 새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이제 가맹 음식점에서도 비건이나 순식물성의 이름을 단 메뉴를 볼 수 있다니, 이 변화가 단순히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뜻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고 있어요.”
-이런 현상에 무엇이 주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시나요?
“20대가 아무래도 변화와 정보에 반응이 빠른 세대잖아요. 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기후변화와 sns상에 많이 노출되는 정보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언론과 sns에 많이 노출되는 활동가들의 역할도 청년들이 비거니즘에 궁금증을 가지게 하는 데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모든 취재원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비거니즘’에 대해 물었을 때, 공통된 키워드는 ‘공존’이었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하는 일이 비거니즘이라는 것이다. 특히 고보는 “전에는 플라스틱 빨대 하나쯤 아무 생각 없이 사용했다면, 이제는 이로 인해 지구 어딘가에서 고통 받게 될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며 “타자를 이해하고 위하는 마음이 비거니즘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에 그 누구도 고통 받아선 안 된다는 신념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비거니즘에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