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생쥐도 세계화 시대에 앞장서는데
[송미옥의 살다보면2] 늦은 나이에 시작해보는 영어회화 열심히 하노라면 어학연수 여행도
어느 새끼 쥐가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하자 엄마 쥐가 ‘멍멍’하고 외쳤다.
고양이는 개소리에 놀라서 도망갔다.
새끼 쥐가 엄마 쥐에게 “멋져요 엄마...”라고 하자 엄마 쥐가 말했다.
“요즘 세상에는 외국어 하나쯤은 해야 먹고살아.”
어느 책에서 본 재밌는 유머다.
오래 전 일이 생각난다. 해외에 사는 아들 내외는 나를 초대하면서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티켓팅부터 착륙까지 노약자, 장애인, 어린아이를 혼자 태울 때 쓰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들어갈 때도 일등, 밥 먹을 때도 일등(후식 메뉴까지 다 정해줘서 입도 벙긋 안 해도 되는 상황), 환승 시엔 경호원이 붙듯 다음 비행기 입구에서 지키고 있다가 좌석에 앉혀놓고 간다. 처음엔 기분이 우쭐하고 좋았는데 점점 자라목이 되어 부끄러웠던 시간들이었다. 멀쩡한 중년이 가슴팍에 이름표를 달고 따라다닌 경험이 있다면 이해할 것이다. 혼자 읽고 대충 해석은 되는데 입이 열리지 않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자존감 무너지던 시간들이다.
저 유머를 읽는 순간 그날이 생각나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했는데, 규제도 풀렸으니 손자 보러 놀러 오라는 며느리의 전화에 이번엔 혼자 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수다 중에 마음 통하는 친구 셋이 회화공부에 합류했다. 모두 나를 격려하기 위한 수호천사들이다. 이참에 더 분발하여 내년엔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여행을 가기로 약속한다. 우리 나이에 목표라는 건 가끔은 뜬구름 잡는 말이기도 하고 입으로만 그리는 그림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행복한지라 이미 마음은 붕 떠서 구름 위를 나는 상태다.
그러다가 발전하여 회화를 도와주는 어플을 소개받아 가입하니 테스트를 한다며 전화예약을 하게했다. 4개월간 혼자 열심히 주절거렸는데, 막상 대화를 하려니 자신이 없어 미루고 미루다 한 달이 지나갔다. 그런데 멀리서 친구가 온 날 저녁, 낯선 외국인에게서 전화가 온다. 맙소사, 테스트 시간을 다음날로 미루는 걸 깜박한 것이다.
옆에 있던 친구가 스피커 표시를 누르니 음성이 더 생생하다. 대충 해석이 되었어도 외국인의 목소리에 입이 꽁꽁 얼어붙어 대답이 안 나온다.
(이전까진 수줍음 많고 어벙하다고 생각한,ㅎ)친구가 내 대신 더듬더듬, 주거니 받거니 말한다. 나는 너무 놀라 꽁꽁 언 입과 눈이 저절로 크게 벌어졌다.
“외국인이 한글 단어만 말해도 우린 대충 알아듣잖아. 아기가 처음 말 배우면서 문법 맞춰 떠드는감? 초보는 초보답게 생각나는 말 그냥 떠드는 거여.“
그날 이후 조금 용기가 생겼다. 이웃집 고추 심는 날, 올해 농업현장에 첫 배정된 외국인근로자를 쓰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나를 부르더니 그들에게 뭘 먹을 건지 물어보고 우선 중참을 좀 사다 갖다 주란다. 푸핫, 드디어 영어 한마디 써 먹을 기회가 온 것이다.
“왓 두 유 원트? 왓 두유 니드? 왓 두유, 왓 두 왓두···.”
국민 체조하듯 심호흡을 하며 중얼중얼, 언덕 밭을 오르는데 나를 본 젊은 외국인 노동자가 먼저 달려 내려온다.
“안농하세요? (손가락을 펼치며)김빠~ 육(김밥 여섯줄), 커피, 물, 주세요, 캄사 합니다”
헉,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초,중,종장까지 완벽하다···. 내 기가 다시 꺾였다. 하하.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외국인이 되어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수박이 익어가듯 남의 나라 언어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 보는 중이다.
멀리 해외에서 외국 아이가 되어가는 나의 손자들, 그 앞에서 서툰 회화가 되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그들이 엄지척하며 "할머니 멋져요"라고 말하는 그날까지 고go~고g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