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전공이 뭐죠? '문송'했던 20대들 "지금도 문송합니다"

[청년이 본 세상] 20대, 취업 위한 복수전공 선택 취업 시 적성보다 안정성 중요

2022-05-20     김서미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학생
여성경제신문은 국민대학교 '뉴스문장실습 수업'(담당 허만섭 교수)과 함께 2022년 연중기획으로 '청년이 본 세상', 일명 '청세' 코너를 운영합니다. 청년의 눈으로 본, 그들이 겪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그들의 글로 담아내겠습니다.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에 취업하는 대학 졸업생들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졸업을 앞둔 대학생은 취업난이라는 현실을 마주한다. 특히 문과계열 학생들은 ‘문과’라는 이유만으로 불리한 취업 상황에 놓여 있다. 수년 전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였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셈이다. 대부분의 문과계열 20대가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취업할 수 있는’ 공부를 따로 해야만 하는 이유다.

서울 S대 동양철학과 재학생 김모 씨(여·23)는 4학년이 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앞길이 막막한 것이다. 김씨의 스마트폰에는 수많은 취업동아리와 공모전 알림이 울린다. 하지만 김씨는 한숨만 나온다고 한다. 김씨는 “앞으로 모든 것은 ‘사람이 원하는 것(want)’에 맞춰진다는데, 정작 내 인생에 내가 원하는 것이 충족되는 일은 없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당장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느냐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고 푸념했다.

부산 부경대 국제무역학과 재학생 권모 씨(여·23)는 거의 매일 공무원 시험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한다. 권씨는 “그냥 학교에서 배운 거 써먹으면서 할 수 있는 게 공무원밖에 없다”며 어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지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는 “꿈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건 한참 전 이야기”라며 “지금은 그저 뭘 해야 빨리 취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다”라고 했다.

전공? 취업 위한 복수전공에 올인

권씨의 사례처럼 취업 준비 과정에서 전공지식을 살릴 수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서울 K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김모 씨(여·22)는 빅데이터 복수전공을 결심하고 관련 학원에 다니며 빅데이터 공부에 몰두한다. 반면 김씨의 책상 한켠에 있는 ‘정치’ 관련 전공 서적들 위엔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김씨는 “졸업해도 공무원 시험 아니면 할 게 없으니 취업에 유리한 분야를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다”며 빅데이터를 공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자기 동기들도 다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빅데이터와 같은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다며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김씨는 “처음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외무공무원이 되고 싶었다”며 ”이제 그런 꿈을 잊어버린 지 오래”라고 씁쓸해 했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 문을 뚫고자 취업준비생들은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픽사베이

또 다른 서울 K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황모 씨(여·24) 역시 시간표에 가득 들어찬 수업 목록을 보면 한숨을 내쉰다. 그는 전공만으로는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생각해 경제학과 복수전공과 교직 이수를 하고 있다고 했다. 황씨는 “이젠 제가 정치외교학과 학생인지 경제학과 학생인지 잘 모르겠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전공은 필요 없고 복수전공이나 교직 이수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라며 졸업을 앞뒀으니 최대한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직장 선택 1순위는 안정성

최근 20대들이 전공과 무관한 직장을 준비하는 것은 '정년 보장 같은 안정성'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20대 취업준비생과 직장인 10명 가운데 3명 이상이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거나 과거 준비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대와 취업준비생과 직장인 28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32.9%가 공무원 시험 준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78.2%(복수 응답)에 달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노후 연금(41.5%)과 복지·근무환경(40.9%), 적성(16.9%) 등의 순이었다. 잡코리아는 "역시 고용안정성과 노후 연금 기대감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공과 무관한 직장에 취업한 사례도 많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대학 전공과 취업’을 주제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가 입사 시 ‘본인의 전공을 살리지 못했다’고 답했다. 전공을 살리지 못한 이유로는 ‘취업이 급해서’(40.9%, 복수응답), ‘졸업 후 진출 분야가 많지 않아서’(31%), ‘전공과 관계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서’(24.9%), ‘전공이 적성과 맞지 않아서’(23.6%) 등의 순으로 이유를 들었다.

취업을 준비 중인 부산대학교 경영학과 재학생 강모 씨(23·여)는 “내가 원하는 걸 찾기보다 현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맞춰가는 것이 더 쉽다”라며 “꿈만 쫓아가기엔 현실은 너무나 냉소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