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좌충우돌' 20대 비전공 예술가들의 고군분투
[청년이 본 세상] 끊임없이 스스로 기회 만드는 노력 필요 “시간과 정보력 싸움”
| 여성경제신문은 국민대학교 '뉴스문장실습 수업'(담당 허만섭 교수)과 함께 2022년 연중기획으로 '청년이 본 세상', 일명 '청세' 코너를 운영합니다. 청년의 눈으로 본, 그들이 겪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그들의 글로 담아내겠습니다.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
G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김모 씨(여·25)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2년간 17번의 뮤지컬 공연을 한 뮤지컬 배우다. 전공과는 상관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그녀는 졸업 이후 처음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문 레슨 학원을 다니고 노래를 부르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전공생과의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의 절대적인 양이 필요한 분야인 만큼 “일찍부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전공생들과의 경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공 교수 같은 전문가들에게 다년간 받은 전문 지식들과 실습으로 다져진 무대 경험은 실전 감각에 있어서 큰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전공학생과 같은 선상에 서려면 보다 더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확보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고가의 레슨 비용을 위해 아르바이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연습에 투자할 시간과 체력이 부족해진다고 하소연한다.
뮤지컬 레슨부터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가죽공예까지. 여가 활동 플랫폼의 예술 카테고리에는 예술가가 아니면 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여러 활동들이 소개돼 있다. 예술 전공자들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예술이 된 것이다.
이처럼 예술에 대한 장벽이 낮아지면서 예술가로서 발돋움하려는 20대 비전공자들이 있다. 비전공 예술가들은 취미로서의 예술이 아닌 자신의 새로운 길로 예술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들에겐 넘어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경쟁 상대인 전공자들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과 해당 분야의 정보를 얻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기회들이다.
20대라면 새로운 도전을 해 볼만하다고 부추기지만 현실은 마냥 평탄치 않다. 시·음악·연기·사진·연극연출 분야에 도전하는 20대 비전공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작가 도전 이씨 "전공생들 인맥·경험 부러워"
K대 2학년 이모 씨(여·22)는 미디어학과에 재학 중이다. 21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이씨는 올해 초, 자신의 책을 출판했다. 국문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책의 기획부터 편집·디자인·유통 등 출판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엄연한 독립 출판 작가이다. 이씨는 자신의 전공 선택에 대해 “도움이 되는 것도 많지만 후회할 만한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관련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따로 예술 활동을 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졸업을 위해 과제나 시험을 챙겨야 하는 것도 부담이 많이 된다”고 토로했다.
전공생은 학과 프로그램을 통해 진로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같은 전공생끼리의 인맥을 통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씨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배우 꿈꾸는 이씨 "시간 투자 어려움 커"
H대학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며 배우의 꿈을 꾸는 이모 씨(여·21)는 연기 레슨을 받으며 각종 단편 독립 영화에 출연한다. 이씨 역시 비전공 예술가의 어려움에 대해 “전공자에 비해서 해당 분야에 시간을 투자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공자의 경우 수업을 통해 의무적으로 예술 활동에 많은 시간을 쏟게 되는데, 비전공자는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따로 시간을 내서 예술 활동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전공자와의 정보력 차이 또한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씨에 의하면 예술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비전공자는 전공자에 비해 같은 분야에 있는 지인도 훨씬 적고 그만큼 정보력도 약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어 그녀는 “비전공자의 경우에는 비슷한 노력을 기울이고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학력을 두고 이야기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음악 분야 비전공 "공연·홍보 정보 부족 실감"
음악 분야의 비전공 예술가들의 상황 역시 비슷하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모 씨(남·26)는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댄스 음악을 작곡해 음원을 내고 클럽·라운지·대학 축제에서 음악 DJ로 활동했다.
김씨는 “비전공 예술가로서 힘든 점이 있냐”는 질문에 “화성학이나 코드 진행 그리고 기술을 배우지 않고 스스로 터득해서 작곡을 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다”고 답했다.
광고홍보학과에 재학 중인 송모 씨(남·24)는 인디 가수로, 현재는 밴드를 준비하고 있다. 송씨는 외부 레슨과 독학을 통해 전공 교육을 통해 배울 수 없는 음악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전공생들과의 정보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홍대 공연 같은 경우에도, 정보가 많이 부족해 시작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전공 예술가들은 소개를 통해 공연과 홍보를 진행하는 반면, 비전공자들은 그 과정을 혼자 실행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그는 “전공 공부와 병행해야 해서 시간 분배가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다.
사진작가 배씨 "정기적 예술활동 어려워"
사진작가 배모 씨(여·22)는 광고 홍보를 전공하고 있다. 자신이 찍은 사진들로 달력을 제작하기도 하고,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하는 그녀 역시 비전공자로서의 어려움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학생이며 비전공자이다 보니 학기 중에는 더더욱 정기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사진과 관련된 전공 지식을 배우고자 다른 전공의 수업을 수강하거나, SNS계정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게재하며 전공생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종종 자신이 ‘비전공자’라는 생각하기 때문에 도전을 주저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다른 것을 제쳐두고 사진 작업에 몰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극연출 비전공자 "인맥과 정보 큰 걸림돌"
“전공생들 사이에서 비전공자로 있다 보면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C대학교 물리학과를 재학 중인 고모 씨(여.24)는 극단에서 조연출을 하면서 연극 연출가로서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고씨는 자신의 전공 선택을 매우 후회한다고 했다. 고씨는 “일단 성적에 맞춰서 대학부터 가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전공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녀는 처음 예술 분야에 도전했을 때는 전공은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고 한다. 고씨는 비전공자로서 인맥과 정보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고 말한다.
뒤늦게 연극의 현장으로 뛰어든 그녀는 인맥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할 때 특히 힘들다고 한다. 이어 “나의 연출 방향에 대해 비전공자라는 이유로 의심 받을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연극 같은 대중 예술은 그나마 비전공자들에게 나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며 “순수예술은 비전공자들을 향한 눈초리를 견디기 더 힘들어 보인다”고 밝혔다.
비전공 예술가들은 공통적으로 시간 투자와 정보력 차이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공자들은 온전히 자신의 예술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지만, 비전공자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뒤늦게 전공생들과 같은 위치에 서기 위해 그들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또한 예술을 전공하면서 인맥을 쌓아가고 해당 분야의 정보를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전공자들과 달리 비전공자들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보가 없는 비전공자들은 자신의 길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
자신의 전공이 예술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밝힌 이들도 있었다. 인디 가수 송씨는 “오히려 광고 홍보라는 본 전공이 있어서 음원 유통을 보는 남다른 시야가 생긴 것 같다”고 한다. 배우를 준비하는 이씨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연습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비전공자가 더 유리할 때도 있다”고 밝혔다.
독어독문을 전공했던 김씨는 “앞길이 막막하긴 해도 내가 타전공을 선택한 것이 지금 내가 더욱 흔들림 없이 예술을 열망하는 장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