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콘텐츠 만드는 일이 역시 좋아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1) 50대 접했던 공공기관 생활 접고 다시 잡지의 세계로 돌아오던 날
상암동 라이프 끝!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회사 밖으로 나섰다. MBC 앞 광장은 여유로웠고, 하늘은 더 높아 보였다. 며칠 전과 비교해 달라진 건 없는데 그곳에 서 있는 내가 또렷이 느껴지는 건 한동안은 이곳에 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구경 나온 사람 마냥 여기 저기를 둘러보며 보이는 광경을 눈에 담았다.
“그 동안 많이 배웠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고맙네.”
다시 한번 중얼대며 수색 역 쪽으로 향했다. 한국문화정보원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다시 매체로 돌아왔다. 1년 2개월 근무했던 곳을 떠나던 날, 챙겨 나온 짐은 많지 않았다. ‘9 to 6근무시간을 지키며 심플하게 생활하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였기에 개인용품을 부리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사무실을 나오며 옆 자리에서 함께 일을 했던 책임∙선임∙주임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앞으로는 만나기가 쉽지 않겠다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정이 꽤 들었나 보다. 아마 동료로서 비슷한 일을 하며 얻은 연대감일 게다. 팀장으로, 조직의 책임자로 오랫동안 일을 해오다가 공공기관에 근무하면서 다시 실무자 역할로 돌아갔는데, 돌이켜볼수록 좋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장으로서 기자들에게 크고 작은 가이드를 제시하고, 전체 사업을 조망하며 업무를 조율하며, 팀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주변사람들을 독려하는 일을 맡아왔고 책임져왔다. 그러다 50대가 되었고, 다른 식으로 살아야겠다는 ‘리셋’의 마음으로 공공기관 업무에 도전한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마주하는 새로운 일! 게다가 잡지사는 어느 업종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직장인데 공공기관은 말 그대로 공무원 집단 아닌가. 지인들은 나의 결정이 흥미로운 듯 ‘이런 식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다니, 대단하다’란 격려도 해주었고, ‘답답하지는 않아?’, ‘일은 재미있어?’라고 물으며 관심을 전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대학원생처럼 배우고 있는 중이야.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 일과 그 외 시간을 나누어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다시 젊어진 것 같아. 30대, 40대 동료들과 실무를 직접 하다보니.”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일을 해오다가 과정이 결과만큼 중요한 공공의 일을 하게 된 것도 고마운 경험이었다. 성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하나하나를 챙기고 검토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행정 업무를 하게 되니 그동안 내가 고민없이 해왔던 일 처리 방식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효율적인 게 최고라고 생각한 채 같이 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사안일 수도 있는 것을 손쉽게 건너뛰었던 건 아닌지 말이다. 정부정책에 맞춘 중앙부처와 산하 기관들의 사업 운영방식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역시 큰 수확이다.
그럼에도 기관이 아닌 다시 잡지 일로 돌아온 건 콘텐츠 제작을 하고 싶어서다. 트렌드와 뉴스에 귀를 열고 이를 기획해 기사화시키고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을 좋아했다. "잡지 다시 만들어 볼 생각 있어? 『모닝캄』 매거진 어때? 여행 콘텐츠, 재미있잖아." 이 한 마디에 마음이 동한 건 분명 에디터들과 기사를 의논하고 비주얼을 구성했던 그 시간을 다시 한번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편집장을 했던 후배들과 함께하는 모임이 있다. 한 두 달에 한번씩 모여 새로운 동네를 찾아 함께 걸으며 근황도 전하고, 서로가 아는 그 지역의 뒷 이야기를 나눈다. 골목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풍경을 놓칠새라 발품을 아끼지 않고, 찍은 사진을 편집해 영상을 만드는 후배들이다.
잡지를 떠나 기업과 기관의 홍보 담당으로 일하고 있는데도 업무와는 별개로 새로운 정보와 장소, 사람에 늘 관심을 가지고 움직인다. “나중에라도 우리끼리 모여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래 이런 형식으로 만들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형식의 매체가 될 수도 있겠는걸.”
달걀을 머리에 이고 장에 가는 소녀들처럼 각자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역시 우리에게는 콘텐츠 만드는 일이 제일 재미있어. 말만 해도 즐거운 걸.”
그래서 돌아오기로 했다.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더 과정에 집중하고, 함께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해보려 한다는 것! 공공기관 직원으로 배웠던 것을 적용하면서 말이다. 역시 배우는 일에는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