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혼밥 세대’ 20대가 말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점

[청년이 본 세상] 회식 축소, 자기계발 및 휴식 대인관계 스트레스 해소… “편안한 집순이 생활”

2022-05-03     한인애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학생
여성경제신문은 국민대학교 '뉴스문장실습 수업'(담당 허만섭 교수)과 함께 2022년 연중기획으로 '청년이 본 세상', 일명 '청세' 코너를 운영합니다. 청년의 눈으로 본, 그들이 겪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그들의 글로 담아내겠습니다.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기사는 2021년 '뉴스문장실습 수업'에 참여한 학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기사의 시점은 2021년인 점을 밝혀둡니다.

20대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경향이 강해졌다. /픽사베이

임희연 씨(가명·여·25)는 평소 ‘이불 밖은 위험해’를 외치며 ‘집순이 생활’을 즐긴다. 대규모 모임보다는 가까운 지인들과 최소한의 모임을 가졌고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선호하지 않는다. 요리·운동·영화감상·인테리어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각종 취미생활을 섭렵한 지 오래다.

임씨는 사람을 만난 후 소진된 에너지를 혼자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다시 충전한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좋아하는 카페를 자주 못 가는 것 외엔 큰 변화나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집순이 생활에 명분을 얻은 것 같다”라며 “최대한으로 약속을 줄여 전보다 훨씬 여유롭게 지낸다”라고 덧붙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삶에 침투한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모임은 축소되고 혼자만의 시간은 급증했다. 이러한 유례 없는 상황에 모두가 당황했지만 ‘혼자’가 익숙한 20대는 의외의 만족을 느끼고 있다. 기존에 해왔던 혼밥·혼술·혼영을 넘어 이젠 혼생(혼자 생활하기)을 즐긴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긍정적 측면을 취재했다.

“코로나가 바꾼 사내 문화에 환호”

서울 중랑구 소재 제조업 회사에 근무하는 황모 씨(28)는 “코로나를 계기로 회식문화가 퇴근 후 술자리 대신 점심시간 카페로 정착되길 원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속한 부서는 원래 회식 빈도가 높았고 항상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코로나 이후에도 아예 사라지진 않았지만 기본 3차까지 이어졌던 회식이 이젠 거리두기 제한으로 9시 전에 1차에서 끝난다고 한다. 황씨는 “덕분에 퇴근 이후 충분한 휴식과 자기계발시간을 확보했다”라며 “무엇보다 술을 적게 마시다 보니 이전보다 확실히 건강해졌다”라고 했다.

세종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인턴사원 한모 씨(여·25)는 "코로나19 이후 편하고 자유로운 점심시간을 즐기고 있다. 더 이상 원하지 않는 메뉴를 먹거나 붐비는 구내식당을 가지 않아도 된다. 주로 혼자 간단하게 먹거나 점심시간 시차제로 한산한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퇴근 이후 부서 회식 역시 단 한 번도 없었다"라며 “상사와 함께하는 식사는 아무래도 업무의 연장선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메뉴의 선택권이 없어 불만도 많았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라고 했다. 이어 “지금처럼 따로 편하게 먹는 식사 문화가 코로나와 관계없이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세종시 한 연구소의 구내식당의 점심시간 모습. 시차제로 한산하다. /한인애

2020년 말 기준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79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 직장인 71%는 회식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2030 미혼남녀 300명 대상 ‘코로나 시대의 나 홀로 식생활 라이프’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과반(54.0%)이 코로나 발생 전과 비교해 혼밥이 ‘늘었다’고 답했다. 혼밥의 이유로는 ‘혼자 식사하는 것이 편해서’(42.7%)가 가장 많았고, ‘혼자 하는 식사’가 좋다는 의견이 58.7%로 ‘사람들과의 식사’(41.3%)가 좋다는 의견을 앞섰다.

이외에도 거리두기 격상에 따른 재택근무, 마스크로 인한 꾸밈비용 및 시간 절감 등의 장점도 나왔다.

“위기를 기회로”

학업과 취업에 분주한 20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각자의 방법을 찾아 자기계발과 재정비의 시간을 보낸다.

2021년 11월 21일 1차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치룬 이모 씨(25·숙명여대 컴퓨터과학부)가 다니던 학원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두 차례(2~3월, 8월 말~10월)나 전면 중단됐다. 게다가 임용고시는 코로나 확진 시 시험 자격을 박탈당하기 때문에 외출할 생각도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대안이 ‘캠스터디(카메라로 공부하는 모습을 공유하는 비대면 스터디 방식)’였다. 캠스터디 앱을 통해 오전 9시에 출석 체크를 하고, 식사시간은 90분 내외로 조절해 오후 7시까지 쭉 함께 공부했다.

이씨는 “실제 캠스터디 효율성이 아주 좋았다. 지각하거나 목표 공부시간을 채우지 못할 시 제재가 있었기에 일단 책상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라는 큰 변수가 있었지만 캠스터디 덕에 시험 전날까지 기존 학업 스케줄과 생활패턴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비대면 수업으로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대학생들도 있다. 송파구에서 성북구까지 왕복 3시간을 통학했던 황모 씨(23·국민대학교 사회학과)는 집 근처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원래대로 학교에 다녔더라면 아르바이트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교통비도 절약되고 통학에 허비됐던 시간을 되찾아 현재 생활에 매우 만족”이라고 전했다.

비대면으로 모여 함께 공부하는 모습. /한인애

대전 W대 철도건설시스템학부 재학생 박모 씨(여·22)는 최근 운전면허 1종보통을 취득했다. “원래는 방학에 준비하려고 했지만 비대면 수업 전환으로 시간 여유가 생겨 면허 학원을 등록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서울 K대 한국역사학과 재학생 김모 씨(여·22)도 같은 이유로 TOEIC 시험과 컴퓨터활용능력 2급 시험을 준비해 학기 중에 응시하기도 했다.

“혼자가 더 편해요”

20대들이 소위 '혼생'을 통해 코로나 시대에 적응하게 된 데는 그동안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한국생명의전화와 ‘SOS생명의전화’의 상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상담을 가장 많이 이용한 연령대는 20대(32.7%)였다. 상담 유형을 살펴보면 이성 교제와 직장 및 사회 적응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인관계에 대한 상담이 2208건(22%)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 S대 행정학과 재학생 윤모 씨(여·25)는 그동안 쌓여온 대인관계의 스트레스와 고민으로 힘들어했다.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하던 즈음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자 기숙사를 퇴실하고 본가로 돌아갔다. 덕분에 생활비를 위해 3년간 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윤씨는 “불편한 사람들 대신 입학 후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지내서 행복하다”라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그동안 각종 모임과 관계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라고 했다.

충남대 경영학과 재학생 조모 씨(22)는 “작년 동아리 활동 중 바쁜 업무보다도 구성원 간의 불가피한 마찰이 더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조씨는 “올해는 모든 공식 모임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업무에만 집중해 내부 갈등이 현저히 줄었다. 각종 뒤풀이와 회식의 취소로 나에게 집중할 시간과 여유도 많아졌다”라고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혼자서 활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20대들이 더 많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알바몬·잡코리아가 20대 남녀 2928명을 대상으로 ‘나홀로족 트렌드’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88.7%가 ‘평소 혼밥·혼영 등 혼자서 해결하는 것들이 있다’고 답했고, 48.0%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원래 나는 나홀로족이다’라고 응답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이 연재하는 ‘김호기의 굿모닝 2020s’에서 “밀레니얼세대의 경우 개인에 따른 취향과 개성을 존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라며 “개인주의의 발전이 가져온 이른바 ‘개취존(개인 취향 존중) 시대’는 2020년대에도 계속되고 강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