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 칼럼] 아시아의 정원도시 싱가포르···꿀벌까지 키우는 골프클럽
[오상준의 마이 골프 레시피 47회] 골프산업 부문 ESG경영 선두 주자 싱가포르 센토사 CC 현장 가보니 토양 개량 농약 쓸 필요 없는 잔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의 주인공은 외계인의 침략으로 지구멸망이 코 앞인 순간에도 분리수거를 하라고 주위에 쓴 소리를 한다. 더 중요한 일들이 산재해 있음에도 그는 왜 이런 사소한 일에 집착한 것일까?
작은 일 하나라도 습관이 되어 변화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진리를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주 마이 골프 레시피에서는 최근 비즈니스계의 화두가 되어 너도나도 사용하는 용어인 ESG 경영을 골프산업에서 실천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려 한다.
코로나19 유행이 발발한 지 벌써 25개월이 흘렀다. 그 동안 해외 코스를 답사하는 것은 꿈에서나 그려보던 일이었다. 그런데 해외 방문과 귀국 시 격리 의무조항이 없어지면서 가까운 아시아 지역의 신규 골프장 답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그 첫번째 목적지는 아시아 최고의 정원도시 싱가포르이다.
“꿀벌이 지구 상에서 사라지면, 인류는 4년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최근 TV 뉴스에서 꿀벌 70억 마리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봄이 채 오기도 전에 이상 고온 현상으로 봄꽃이 만개했고, 이 기간에 꿀 따러 나갔던 벌들이 갑자기 추워진 탓에 모두 얼어 죽어 벌집에 남은 여왕벌마저 폐사했다는 추측이었다.
십 수년 전 같았으면, ‘뭐, 벌들은 또 나타날 것이고 조만간 다시 정상화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안도감이 앞섰겠지만, 왠지 이번엔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만큼 지구 온난화와 생태계의 교란이 우리 일상 속에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2011년 3월 유엔환경계획(UNEP)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작물 100여종 가운데 코코아, 커피, 아몬드를 포함한 71종의 작물이 꿀벌의 수분 작용으로 생산된다고 한다. UNEP는 꿀벌이 감소하면 생태계 교란과 식량안보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꿀벌의 실종은 양봉 농가의 위기를 넘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상이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반면, 게으르고 뒤떨어진 사람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행동을 취하지 않고 "뭐 별일 있겠어?’"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악습을 이어간다.
미국과 유럽 등 농업 선진국들은 꿀벌을 보호하고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한 크고 작은 노력을 해왔다. 유럽연합(EU)은 꿀벌에 치명적인 살충제의 사용을 금했고, 영국의 자선단체 ‘버그라이프’는 영국 전역 총 4만 8000km2에 달하는 지역에 야생화를 심어 꿀벌 개체수 증가를 도모하고 있다. 1 km2가 약 30만평, 대략 어림잡아 18홀 골프장 1개의 면적이므로, 골프장 4만 8000개가 들어설 수 있는 거대한 면적에 야생화 씨를 뿌렸다는 것이다.
센토사 골프클럽의 ESG 경영
이번 여행 중 방문한 센토사 골프클럽은1974년 개장 이래 SMBC싱가포르 오픈과 HSBC 우먼스 챔피언십을 개최했다. 특히 HSBC 우먼스 챔피언십은 박인비, 미쉘 위, 박성현, 김효주, 고진영 등의 우승자를 배출하여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TV 화면 속 잘 관리된 골프장은 센토사가 갖고 있는 다양한 자랑거리 중 일부일 뿐이다.
총 지배인 앤드류 존스톤의 리더십 아래 센토사의 임직원은 수 년간 지구 온난화에 맞서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골프장 관리를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계획하고 실천해 왔다. 그리고 그 결실이 실제로 증명되어 좋은 본보기로 세계 각국의 골프장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중 하나인 '#KeepitGreen' 은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고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이다. 골프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없애고, 허브 정원에서 다양한 식자재를 자급자족하며, 전동 카트에 사용됐던 납 배터리를 리튬 배터리로 교체하고, 코스 내 수분이 부족한 지역에만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정밀한 관수(스프링클러)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이들이 수년간 지속적으로 실천해 온 관심과 노력의 결과이다.
이들이 골프장의 본 바탕인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한의학에서 인간의 몸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 한의학에서는 체질 개선 등을 통해 병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을 개선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해결을 꽤 한다.
센토사의 잔디관리법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병충해와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살충제와 농약을 쓰는 대신 토양개량을 통해 잔디와 식물이 자라는 환경을 최적화함으로써 병충해와 싸워 이길수 있는 자생력을 증가시키는 근본적인 방식을 택했다.
'게임온(GameOn)'은 ‘Biochar(바이오차르)’라는 친환경 토양개량제를 사용하는 캠페인의 명칭이다. 바이오차르는 일종의 숯인데, 토양 스스로가 회복력을 키우도록 돕는다. 센토사는 이를 도입하여 잔디의 성장 속도를 400%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잔디에 서식하는 해충 문제도 해결했다. 그 결과 비료 사용은 40% 감소됐고 농약 사용은 95%까지 줄일 수 있었다.
센토사는 심지어 양봉에도 투자하고 있다. 현재 코스 내에 4개의 봉군이 있는데, 향후 40개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3년 전 필자가 제주도에서 기획한 국제 골프세미나인 나인브릿지 포럼에 참가한 앤드류 존스톤이 코스 내에 꿀벌 서식지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했을 때 솔직히 말해 필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보는 시각이 180도 달라졌다.
나인브릿지 포럼에서 앤드류의 발표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한 참가자가 질문했다.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목표 달성을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뭡니까?’ 이런 질문이 익숙하다는 듯 그가 답했다.
“저희 클럽의 기술 담당 이사가 제게 물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키우는 벌들이 싱가포르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요.’ 그때 제가 그랬죠. 이건 단순히 우리 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요. 우리가 이 일을 하면, 세계가 이 일을 할 수도 있겠죠. 우리가 선도하고, 또 다른 이들이 동참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니까요.”
겉만 그럴듯한 보여 주기식 친환경 운동이 아닌, 작은 것부터 개선해 나가려는 의지를 갖고 실천해 온 모범적인 골프장이 가까운 동남아시아 싱가포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박수만 치고 말 것인가? 아니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인가?
ESG경영을 표방하는 대기업부터 자신들이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대기업이 솔선수범하여 모범을 보인다면 다른 골프장들도 이를 따를 것이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희망을 심게 될 것이다.
다음 주에는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는 싱가포르 아일랜드 컨트리클럽(SICC)의 메이데이 채리티 이벤트를 소개하겠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