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이야기] 조용한 소꿉놀이

[중앙치매센터 치매안심센터 수기 공모전 장려상] 어린이로 돌아간 치매 걸린 남편 그를 돌보는 아내의 돌봄 수기

2022-03-31     최영은 기자

 

20대에 만난 남편은 지금 소꿉놀이가 친구가 되었다. 

우리의 만남은 1963년,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위하여 인천에서 서울로 기차로 통근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린 교제한 지 5년 만에 결혼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딸 밑으로 두 아들을 두었고, 아이들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 직장을 갖고, 결혼하고, 자녀를 두고 열심히 살아왔다. 

당신은 80 초반 나는 70 후반으로 접어들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모두 갖추고 여행이나 다니자고 이야기하곤 했다. 즐겁고 아름답게 노후를 보내고 싶었다.

남편은 공대 화공학과와 경영학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수십 년을 연구실에서 근무했다. 자기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예리하고 빈틈없는 꼼꼼한 성격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월 속에서 기력이 조금씩 쇠퇴해져 가고 당신 스스로도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멍해지는 일이 점점 많아지자 아들에게 하소연하였고 곧바로 포항에 있는 큰아들  병원에서 종합 진찰을 받았다. 

74세, 남편은 치매 초기로 진단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당신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 4살의 아이가 되어갔다. 짜증을 내며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방방 뛰는 모습이 점점 잦아지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당신이 미운만큼 안쓰럽고 연민스러웠다. 

외출하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심통 부리고 떼를 쓸 때,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 큰아들 식구가 돌아와 며칠 머무는 동안 아들 내외를 보고 저분들이 누구냐고 물어볼 때, 화투 놀이를 하다가 날 보며 아이들은 몇 명을 가졌으며 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묻는 그 말에  당신의 아이들은 잘 자랐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느냐고 그 자식은 누구입니까 하고 되물으면 한참을 나를 뚫어지게 보다가 “아 당신이네 내가 실수했네. 미안해” 하고 슬며시 웃음을 보일 때. 

괴팍하게 고함지르며 화내다가도 “내가 원래 성격이 과하고 급하고 또 멋없이 소리를 질러서 미안해 우리 싸우지 말자. 나는 네가 좋아. 아들딸 낳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지. 응?” 하고 말하며 웃는 모습에 우리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말 없이 어제처럼 살아간다.

아침이 오면 저녁이 오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면 또다시 봄이 돌아오듯 삶의 섭리 속에서 죽음의 길목에 서 있는 우리는 어린아이가 소꿉놀이 하는 것처럼 엄마도 되었다가 4살 먹은 아이도 되었다가 하며 대화하고 뛰놀며 춤도 추고 노래하며 살아간다.

소꿉놀이 친구로, 죽음의 동반자로 조금씩 죽음의 문턱을 향해 꾸준히 다가간다. 오늘도 4살 어린이 내 남편과 조용히 소꿉놀이하며 우리는 자연이 부르면 주저 없이 갈 것이다.

왔던 모습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