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거 누구 공약이지?

공약 표절·재탕에 정책 차별화 전무 공약 준수 의구심에 유권자만 혼란

2022-02-04     최수빈 인턴기자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후보 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가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오른쪽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대선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선후보가 표심 몰이를 위해 공약 표절과 재탕을 남발하며 정책 차별성이 사라지고 있다. 유권자들은 가뜩이나 ‘비호감 대선’으로 불리는 이번 선거에서 공약만으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공약이 비슷하면 우위에 서기 위해 무차별 매표 경쟁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부동산 공시가격 정책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18일 종부세에 영향을 미치는 공시가격 전면 재검토를 발표하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더 나아가 같은 해 12월 23일 양도세 중과 2년 유예 및 주택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한다는 공약으로 유권자 표심 잡기에 나섰다.

두 후보의 교통공약도 차별화가 전무한 수준이다. 이 후보와 윤 후보는 지난달 잇따라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노선을 확장, 신설해 6개로 확대하는 공약을 각각 발표했다. GTX 노선, 지하화 구간 등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수도권 30분 생활권을 구축하고 지하화를 통해 주택공급 등 개발지역을 확대한다는 점이 같다.

그러나 두 후보가 앞세운 GTX 연장과 신설은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돼야 건설이 진행될 수 있다. 이들 철도 공약이 실질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시기는 제4차 국가철도망 변경 또는 제5차 구축계획이 수립될 2026년이다. 철도망 계획에 반영된다 해도 차기 정부 내에 착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두 후보는 공약뿐만 아니라 공약을 홍보하는 방식도 점점 닮아가고 있다. 윤 후보가 SNS를 통해 발표했던 한 줄 공약이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자, 이 후보도 한 줄 공약 형식으로 SNS에 게시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이 후보마저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 나은 변화=이재명, 더 나쁜 변화=윤석열”이란 단문을 올려 벤치마킹에 나섰다.

민주당에선 윤 후보의 ‘한 줄 공약’ 방식을 겨냥해 지난달 11일 이해찬 전 대표가 SNS를 통해 “툭 내뱉는다고 정책이 아니다. 국민들께 발표할 때는 최소한 ‘왜 필요하고 그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효과들은 어떻게 보완하겠다’ 정도는 얘기해야 한다”고 던진 비판이 무색해졌다는 얘기도 나오는 실정이다.

윤 후보는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에는 ‘청와대 해체’ 공약을 발표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등도 대선 후보 시절 약속했지만 실현되지 않은 공약 재탕에 나섰다.

특히 문 대통령은 18대(2012년), 19대(2017년) 후보 시절 두 차례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경호 문제와 보안 시스템 증축 비용 등이 문제 되면서 공약은 실행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9년 “경제가 엄중한 시기에 많은 리모델링 비용을 사용하고 행정상 혼란도 상당 기간 있을 수밖에 없다”며 청와대 이전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유권자들 사이에선 후보들의 공약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하고 있다. 두 후보의 공약을 정리한 각종 카페 게시글에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에 오로지 공약만 보고 투표하려고 했는데, 더욱 헷갈린다”, “우선 표를 얻고 보자는 듯 그냥 아무거나 내뱉는 거 같다”, “선거철 단골 소재여서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등 댓글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