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이야기] 아버지의 난초 화분
[중앙치매센터 치매안심센터 수기 공모전 우수작] 섬망 이후 매일 드라마만 보시던 치매 어머니 치매안심센터의 쉼터사업 통해 건강 되찾아
“이거 내다 버려라. 다 죽은 걸 그대로 두는 게 아니다”하며 엄마가 역정을 내셨습니다. 베란다에 있는 아버지의 난 화분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계셨을 때는 잎이 진녹색으로 윤기가 흐르고 난 줄기가 힘이 있었습니다.
2018년 5월 21일 밤 11시 25분, 방을 나가보니 화장실 문이 평소와 달리 비스듬히 닫혀 있고 그 틈에서 가느다란 빛이 나오는데 서늘한 느낌이었습니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변기에 앉은 채로 엄마가 의식이 없었습니다. 해운대 백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내과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로 옮겨 4개월을 보내셨습니다.
의사는 섬망이라고 했습니다. 신체가 회복되면 섬망은 없어질 거라 했습니다. 섬망으로 끝나길 간절히 바라면서 2018년 9월 10일 퇴원을 했습니다. 치매가 아닌 섬망으로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엄마는 다음해 초봄 혈관성 치매,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엄마는 과거 기억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루하루 드라마를 보십니다. 한걸음이라도 걷게 해보려는 저와 드라마 앞에서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엄마의 신경전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엄마와 밥을 같이 먹고 아침에 햇볕을 쬐게 하고 몇 걸음 걷게 하는 것이 저의 큰 일과가 되었습니다. 엄마한테 무언가가 정말 무언가가 꼭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치매안심센터의 치매환자를 위한 인지재활프로그램인 쉼터사업을 알게 됐습니다. 2019년 여름, 쉼터 교실에 전시된 어르신들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항상 하셨을 화분 물주기, 아득한 시절 만져봤을 색연필, 크레용으로 밝게 칠하고 만들어가며 얼마만큼 마음이 편안해졌을지 상상이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이런 것이 엄마에게 절실했습니다. 그러나 가지 않으려 하는 엄마를 설득하는 게 큰 문제였습니다. 엄마가 신체적으로 일주일 내내 견뎌낼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런 불안을 가득 안고 2019년 9월 입학을 했습니다. 청력 저하로 제가 옆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기도 하면서 저도 엄마 옆에서 어르신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교구 놀이도 하고 편 나눠 게임도 했습니다. 이주일이 지나면서 엄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것은 엄마가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를 괴롭히던 불면과 호흡곤란의 악순환이 옅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런 모든 변화가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제는 엄마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혹시 현관문을 열고 나갔을까. 나가면 주소를 모르는데” 짧은 순간 온갖 상상을 하며 큰소리로 “엄마”하고 한 번 더 부르자 베란다 장독 옆에서 “왜” 하는 대답이 들렸습니다. 베란다로 나가보니 엄마가 등을 돌리고 앉아서 아버지의 죽을 듯 죽을 듯하며 살고 있는 난 화분에 물을 주고 계셨습니다. “이게 꽃이 피면 하얗고 예쁘다”라고 하시면서요. 그러고 보니 착각인지 난 줄기의 색깔이 다소 짙어진 듯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