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이야기] 엄마가 또 배회하셨어요

[네이버 카페 치매노인을 사랑하는 모임 일화] 산을 배회하는 노모와 엄마를 지키고 싶은 딸

2022-01-27     최영은 기자

 

58세 딸입니다. 미혼이고 엄마랑 둘이 살아요.

어느 날 아침 6시 30분부터 7시 50분까지 운동하고 집에 들어오니 엄마가 안 계시더군요. 가슴은 뛰고, 정신없이 밖으로 나가 한참을 뛰어다니며 엄마를 찾았습니다. 근처엔 안 계셨어요.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받으셨어요.

“엄마 어디야?”라고 물었더니, 엄마께서는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라고 하셨어요. 산이라고만 하시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시더군요. 조금 걸어간 뒤에, 전화할 테니 일단 끊으라고 하셨어요. 조금 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어떤 젊은이가 받더군요. 

치매 환자인데 배회중이시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마침 저희 집 쪽이 출근길이라며 집 앞까지 모시고 왔어요. 엄마는 얇은 초겨울 점퍼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멘 모습이셨습니다.

제가 없는 사이에 엄마 눈에 잠시 헛것이 보였던 것 같아요. 아침에 눈을 뜨니 어떤 여자가 집에 들어와서 “뻔뻔스럽게 왜 남의 집에 있느냐. 왜 자식들 힘들게 하냐. 따라와라”라고 이야기했답니다. 그 사람이 너무 빨리 가는 바람에 힘들어 주저앉으니 빨리 오라고 재촉하더랍니다. 엄마 눈에는 그 사람이 여자로 보이다가 남자로 보이다가 하셨다는군요. 그렇게 산까지 따라가신 거죠.

30분을 헤매다가 엄마를 만나니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엄마를 모시고 온 그분께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말이죠. 엄마를 꼭 안아드리고 다독이는데 엄마는 연신 미안해하셨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니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집에 와서 같이 침대에 누웠는데 엄마 몸이 꽁꽁 얼어 있었어요. 엄마는 금세 또 잠이 드셨어요. 잠에서 깬 엄마는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주위를 둘러보셨어요. 또 헛것이 보였다고 하시더군요. 저를 보고 딴 사람으로 알고 깜짝 놀라셨어요. 손을 만지며 안심시켜드렸더니 “여기 우리 집이네”하고 웃으셨어요.

“이를 어쩌면 좋을까?” 저는 당장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저에게 신세 져서 미안하다고 하시던 엄마. 평생 같이 살았는데, 그 사실을 잊으시고 딸 집에 와서 신세 진다고 하십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니 눈물만 쏟아지는데,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었어요. 엄마를 주간보호센터에 모셔다드리고 대성통곡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린 아침이었어요. 엄마가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앞으로도 제가 지켜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