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유럽 암초에 무너진 조선M&A···韓공정위 아마추어리즘 탓
EU집행위 코털 건드린 김상조 발언 분리 매각 아닌 통폐합 산은 오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무산 배경엔 공정거래위원회의 늑장대응과 아마추어리즘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합병 승인을 불허한 이유는 두 회사가 합쳐지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을 독점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었는데, 양 사의 합병이 EU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번 합병이 성공하기 위해선 싱가포르·중국·일본·EU·카자흐스탄·중국 등 6개국 경쟁당국의 승인이 필요했다. 아직 한국과 일본의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EU가 불허한 이상 나머지 심사국의 판단 역시 무의미해졌다.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에 맞춰 쏟아지는 LNG선 발주를 두 회사가 싹쓸이해온 경쟁력이 결정적으로 불허 사유로 작용했다. 실제로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발주된 LNG선 총 78척 가운데 70% 가량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챙길 정도로 국내 조선산업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고 있다.
김앤장법무법인에 법적대응을 맡긴 현대중공업은 "LNG를 동력하는 선종은 새롭게 등장한 것이어서 기존 선박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이는 EU 경쟁당국이 선종별로 시장지배력을 조사해 소비자 이익 침해를 따져왔다는 선례를 간과한 태도였다.
LNG 독점 초기부터 우려됐던 부분
유럽시장 특수성 간과···안일한 대처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과 합병을 추진한 2019년, 프랑스 알스톰과 독일 지멘스가 고속철 부문 통합을 시도했지만 소비자의 이익 침해 이유로 단칼에 불허됐다. 이뿐 아니라 크루즈 조선소 핀칸티에리가 지난 2017년 9월, 크루즈 전문 조선업체 STX프랑스를 인수했지만 EU 반독점 조사위원회의 독과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는 STX그룹 붕괴의 단초가 됐다.
그럼에도 싱가포르·카자흐스탄에 이어 중국 등으로부터 '무조건 승인' 결정을 얻어내면서 최종 인수에 근접했지만, 끝내 EU의 승인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공정위를 비롯한 산업은행의 소극적인 대응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의 안일한 대처는 2019년 3월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 간 인수 본계약 체결 때부터 드러났다. 당시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은 "지멘스-알스톰 사례와 조선산업은 성격이 굉장히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EU의 코털을 건드렸다. 또 그러면서 "어느 경쟁당국보다도 한국 공정위가 먼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장담하면서도 아무런 후속조치 없이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로 옮겼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전체 선종 평균 시장지배력이 21%이기 때문에 독과점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공정위 입장이었으나 다른 경쟁당국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주장이었다. 이후 취임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뒷짐만 지다 손을 떼게 됐다.
공개 분리 매각 했다면···아쉬움 남겨
후폭풍 이동걸-권오현 수의계약 겨냥
대우조선이 산업은행 채권단 관리체제로 전환되면서 빅딜을 진행한 이동걸 산은 회장의 계획도 공염불이 됐다. 이동걸 회장은 권오현 전 부회장과 본계약을 발표하면서 "합병이 잘못되면 직을 내려놓겠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언급할 정도로 자신감을 내비췄지만 노조의 반대 등 위기가 닥쳤을 때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결국 이번 합병 실패로 인한 후폭풍은 당시 대우조선을 경쟁입찰에 붙이지 않고 현대중공업 한 곳과 사실상 수의계약한 산업은행을 겨냥하고 있다. 현재 두 회사 가운데 하나가 LNG 사업 부분을 타 회사에 매각한다면 합병 승인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 EU 집행위원회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각 사업부를 분리매각 했다면 독점 우려가 컸던 LNG선과 잠수함 사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김우일 대우 M&A대표는 "양사의 기업 결합 시도는 겉으로는 민영화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폐합하는 성격이 다분해 처음부터 국제 분쟁의 빌미가 컸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부터 수주 호황이 이어지면서 이번 합병 불발이 당장 두 기업의 경영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제기됐던 과당 경쟁 체제가 이어지면서 중장기적으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동걸 회장은 내주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우조선 경영정상화 및 민영화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