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마전 소형 타워크레인②] 마구잡이 구조변경···갈 곳 잃은 안전

대형 크레인을 소형으로 마구잡이 개조 잘라 붙이기·볼트 빼기 등···유형 갖가지 소형 등록 장려한 국토부 책임 전가 급급 불법 개조 크레인 전수 조사도 차일피일

2022-02-07     이호준 인턴기자

광주 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몰 참사는 건설 현장의 인재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대한 중장비와 무거운 자재는 언제든 현장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비록 이번 사고에선 드러나지 않았지만 건설 현장엔 또 다른 '지뢰'가 도처에 널려 있다. 무거운 자재를 운반하는데 쓰이는 타워크레인이다. 특히 사람이 타지 않는 소형 타워크레인에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3t 미만의 소형 타워크레인은 조종사가 타지 않고 밑에서 리모콘으로 조종한다. 제대로 운영한다면 인명피해 위험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사람이 타지 않는 소형'이란 미명 하에 조악한 중국산이나 외국에선 단종된 낡은 장비가 대거 수입됐다.

검사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서류 심사로 통과되기 일쑤다.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중장비인데 20시간 실내 교육만 받으면 조종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금도 불법 개조된 부실 장비가 전국 건설현장에서 버젓이 운행되고 있다. '안전사고의 복마전'이 된 소형 타워크레인의 실상을 여성경제신문이 6회에 걸쳐 파헤친다.
[편집자 주]

①안전사고 얼룩진 건설 현장 복병
②마구잡이 구조변경···갈 곳 잃은 안전
③검사·인증 장사 여념 없는 건설기계안전관리원
④'국산 타워의 함정'···국토부 인증 청우T&G 
⑤현장의 안전불감증···허술한 교육 제도
⑥산하기관·민간에 책임 전가 급급한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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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0월 6일 태풍 '콩레이'가 부산을 강타했다. 초속 20m 강풍에 사하구 주상복합 건설 현장에 서 있던 소형 타워크레인이 도로로 곤두박질했다.  당시 자재를 들어올리는 '팔'의 역할을 하는 타워 상부 '지브(Jib)'는 반으로 꺾였다.

# 2019년 4월 19일 부산 영도구 건설 현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자재를 들어올리던 크레인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공사 중이던 건물 옥상으로 쓰러졌다. 타워 상부는 기둥에서 떨어져 분리됐다. 크레인이 회전하는 턴테이블 부위 속 기어 부품이 훤히 드러났다.

#2019년 11월 30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도 같은 사고가 벌어졌다. 크레인에 깔려 갓길에 주차된 트럭과 도로가 대파됐다. 쓰러진 크레인은 현장 펜스를 넘어 바로 옆 오피스텔 2~3층을 덮치기도 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외벽과 유리창이 박살 난 아찔한 사고였다.

2019년 11월 30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개조된 타워크레인이 사고를 일으켰다./ 사고 현장 CCTV

당시 부산에서 일어난 3건의 사고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사고 크레인이 모두 2016년 국토교통부가 주도한 소형 타워크레인 등록 지원사업에 따라 같은 해 7월 25~7월 28일 일괄 등록된 10대 중 3대였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사고 크레인 모두 사람이 타서 조종하는 'T형 유인 대형 크레인을 무인인 L형 소형 크레인으로 개조한 장비였다. 큰 타워를 작게 개조하는 과정에서 균형이 깨지는 바람에 외부 충격이나 무게에 취약해 쓰러지는 사고가 빈발했던 셈이다. 업계에선 이런 개조를 이른바 ‘타워크레인 잘라 붙이기’로 부른다.

2019년 4월 19일 부산에서 사고를 일으킨 소형 타워크레인은 'UB2945 (DW2945)' 기종으로 '154HC T형' 대형 유인 타워크레인을 L형 소형 타워로 개조한 장비였다./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동조합

사고를 일으킨 소형 타워크레인은 'UB2945 (DW2945)' 기종이었다. 독일 립벨사가 만든 '154HC T형' 대형 유인 타워크레인을 L형 소형 타워로 개조한 장비였다. 주로 운전석을 떼고 상판을 줄여 L형 균형을 새로 맞추는데 무게 중심이 달라졌는데도 기둥과 볼트는 이전 부품을 그대로 쓰다 보니 뒤집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한상길 한국 타워크레인 임대업 협동조합 이사장은 해당 사고에 대해 “대형 구조로 소형을 만들면 더 튼튼하리라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라며 “T형 타워의 카운트집(타워 상판)을 잘라내서 사고 기종에 용접해 붙이는 식으로 재활용하면서 뒤로 넘어가는 힘을 못 견딘 타워크레인이 카운트집과 함께 쓰러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로 개조 타워는 운전석을 떼고 상판을 줄여 L형 균형을 새로 맞추는데 무게 중심이 달라졌는데도 기둥과 볼트는 이전 부품을 그대로 쓰다 보니 뒤집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산업안전보건공단

대형 크레인을 소형으로 개조해서 얻는 이점이 있을까. 익명의 임대업 관계자는 "대형이 조종사 인건비 포함해서 100만원 남길 때 소형으로 개조하면 600만~700만원까지도 벌 수 있었다"며 "정부도 장려했기 때문에 업체로선 개조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소형 크레인은 20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누구나 조종할 수 있다. 정식 면허증을 보유한 조종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대형 크레인보다 인건비를 줄일 수 있었다. 임대업 관계자는 "안전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영세업체로선 당장 눈앞의 이익을 좇을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로선 개조가 불법도 아니었고 안전 검사도 통과했기 때문에 그 정도로 위험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로선 장려했던 사업이어서 뒤늦게 개조를 문제 삼으면 대부분 영세한 임대업자의 강한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원희 한국노총타워크레인노동조합 홍보국장은 "(초창기) 개조를 자행했던 사람에게 속아서 산 사랍도 있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그 사람들은 재산상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편법 개조 소형타워크레인 목록/ 여성경제신문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동조합으로부터 여성경제신문이 입수한 편법 개조 소형타워크레인 목록에 따르면 국토부도 잘라 붙인 타워크레인이 시한폭탄임을 알고 있었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 소형 타워크레인 불법 개조가 도마에 오르자 국토부는 개조 타워크레인 목록을 만들어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손병석 국토부 제 1차관은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기본이 유인으로 운전해야 하는 타워인데 불법으로 개조된 기체를 일제점검에서 적발했다”며 “안전관리를 더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로도 사고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자 2020년 6월 10일 ‘제작결함 타워크레인 퇴출’ 보도자료를 내고 “안전에 관용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잘라 붙인 기종에 관해선 “제작자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며 자발적 등록 말소에 대해선 별도 제재를 하지 않았다. 

2019년 경북 안동시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일어난 타워크레인 사고로 타워 상부가 180도 뒤집힌 채 반으로 접혀 지브 끝이 땅에 닿았다./ '영원한 자유인' 네이버 블로그

무분별한 타워크레인 개조는 '잘라 붙이기'뿐만이 아니다. 타워크레인이 회전할 때 무게를 지탱해주는 이음새 부위의 볼트 숫자를 줄이는 개조도 있다.

2019년 9월 26일 오전 9시 40분쯤 경북 안동시 명성아파트 신축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상부가 뒤로 넘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산 장비업체인 청우T&G사가 제작한 크레인이었는데 타워 상부가 반으로 접혀 지브 끝이 땅에 닿을 정도였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당시 사고 조사 결과 뒤가 무겁게 제작된 설계 결함이 지적됐다. 타워 상부에 늘어난 핀홀 지지가 기체 전체를 지탱하지 못하고 터졌는데, 타워의 무게중심이 비정상적으로 뒤로 쏠려 있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각에선 제작결함에 대해 보강의 필요성이 제기 됐음에도 해당 제작사는 반대로 볼트 숫자를 줄였다. 청우T&G 기종에선  2020년 1월 이후부터 볼트 갯수를 줄이는 구조변경이 확인된다.

타워크레인 회전부위 볼트 갯수를 2개 줄인 구조 변경.

청우T&G의 조치에 조종사 노조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동조합 김경수 대외협력 국장은 "가뜩이나 구조가 불안한 장비인데 위험을 오히려 가중시키는 조치"라며 "결국 작업할 때 데미지는 그대로 타워크레인에 전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오희택 시민안전감시위원회 위원장은 2021년 6월 30일 공개한 영상을 통해 청우T&G사 타워크레인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국토부가 업계 회의를 통해 청우 생산 장비 문제점을 청취했다"며 "그럼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예고된 사고를 내게 했다"고 주장했다.

볼트 구조를 변경한 기종은 대부분 청우T&G사에서 제작한 'CW2940 계열'이다. 타워 상부와 기둥을 연결하는 36개 볼트가 34개로 변경됐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2021년 6월까지 약 70여개 기종의 볼트 갯수가 줄었다.

볼트 갯수를 줄이면 적어진 수만큼 개당 볼트가 지탱하는 무게가 늘어 쉽게 피로해질 수 있다. 한상길 한국 타워크레인 임대업 협동조합 이사장은 “각 볼트별로 지렛대 원리와 넘어가는 힘에 대한 정확한 계산이 수반돼야 한다”며 “볼트 개수를 줄이면 각 볼트가 받는 항복점이 달라져 상승 작업이나 회전 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타워 상부와 기둥을 연결하는 회전 부위 36개 볼트가 34개로 변경됐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그러나 청우T&G 측은 이런 지적에 안전 상의 문제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볼투 갯수를 줄여 기둥의 회전부위에 생기는 연결부 간섭을 줄여 회전이 더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윤치순 청우T&G 대표이사는 “당초 3t 타워크레인 제작에 앞서 10t용으로 튼튼하게 턴테이블 링기어를 만들다보니 2개를 빼도 되겠다고 생각해 구조 검토를 의뢰했다”며 “구조 검토 결과 이상 없다고 나와 진행하려고 보니 기존 도서와 볼트 갯수가 달라 아예 형식변경을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개조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당초 타워크레인 법에 잘못된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현행법 상 볼트 갯수 구조변경은 불법이다. 법 상 허용하는 구조변경 범위는 노면과 닿는 설치 기초와 전기장치다. 건설기계관리법 제9장 40조 벌칙에 대한 조항은 ‘건설기계의 주요 구조나 원동기, 동력전달장치, 제동장치 등 주요 장치를 변경 또는 개조한 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볼트 구조변경은 버젓이 국토부 구조 검토를 통과했다.

한두환 변호사는 불법 구조변경 실태와 관련해 “특정 업체가 형식변경을 할 수 없음에도 구조를 주먹구구식으로 변경해 사고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며 “어떻게 검사를 하고 심사가 이뤄지는지 알 수 없어 국감에서도 나왔듯 정부 관리 감독 측면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소형타워크레인 연합회 관계자는 "건설기계관리법 시행규칙을 보면 동력전달장치의 형식 변경도 구조 변경 범위에 포함돼있다"며 "법 규정이 애매한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현행법이 허용하는 구조변경 범위는 노면과 닿는 설치 기초와 전기장치다./ 국가법령정보센터

반면 국토부는 제작사가 시정해야 되는 문제라고 책임을 민간에 전가하고 있다. 이동훈 국토부 건설산업과 타워크레인 담당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설계 도서와 실물이 다르면 정부는 불법 구조 변경으로 보고 있다"며 "그런데 판단이 쉽지는 않은 사례가 많아 제작자가 자발적으로 시정 조치를 하도록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행법 상 불법인데 어떻게 구조 검토가 통과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마 제작자가 구조 검토사에 의뢰 후 이게 맞다면서 서류를 내줬을 것"이라며 "불법 구조변경에 편법적인 절차가 많은 만큼 시정 조치로 가야 한다"고 해명했다.

국토부의 미온적 입장에 지난해 10월 고지한 구조변경 타워크레인 퇴출 관련 전수조사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2018년 이후 구조변경된 소형 타워크레인 885대가 대상이다. 국토부 측은 "서류조사는 다 끝냈으나 대수가 많아 31일 이내로 끝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당초엔 2021년 11월~2022년 1월 사이 모든 점검을 마치겠다고 했으나 언제 마무리될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성경제신문은 소형타워크레인 문제를 시작으로 산업재해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본지는 이 기사를 시작으로 전국의 소형타워크레인의 안전 문제를 정밀 진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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