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팩] '공정경제' 뒤에 숨은 '갈라치기'···윤석열표 기업지배구조

[깐깐한 팩트탐구] 尹 자본시장 공약 분석 1997년 폐기된 의무공개매수 꺼내 들어 M&A시 자본조달 비용 급증 부작용 간과

2021-12-29     이상헌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준석 대표가 주관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대통령 선거를 3개월 앞두고, 자본시장 참가자 마음을 얻기 위한 후보들 간 경쟁이 치열하다. 여야 후보 너나할 것 없이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고 주식거래세 폐지 등의 공약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것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다. 검찰 재직시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를 주로 수사해온 경험을 토대로 주식·금융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꺼내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주도권을 내줄 수 없다는 분위기다. 그는 "국힘당으론 공정경제를 실현할 수 없다"면서 기업거버넌스 전문가 채이배 전 바른미래당 의원을 영입하며 후속타를 준비하고 있다.

팩트경제신문은 '깐깐한 팩트탐구' 코너를 통해 '공정경제' 포문을 연 '윤석열 후보의 기업지배구조 관련 공약을 검증했다. 분석 결과 윤 후보는 1주 1의결권이란 상법상의 일반 원칙만을 강조한 나머지 평소 그의 철학과는 모순된 김종인표 경제민주화에 치우치고 있다.

1주 1의결권 유일한 원칙 아닌데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기업관 탓 

윤 후보는 지난 26일 유튜브 방송 삼프로TV에 출연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를 1주 1의결권이 무시되는 왜곡된 상황으로 규정했다. 그러고는 이튿날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의무공개매수제' 도입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

의무공개매수제는 기업이 주식을 매입할 때 특정 비율 만큼 공개매수를 강제화하는 방식이다. 소액주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은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증권시장 밖에서 지배권을 취득하는 경우 매도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control premium)을 독점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큰 소액주주도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윤 후보 측 주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장점에도 의무공개매수제는 기업의 창의적 경영 활동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이미 20년 전 제도권에서 사라진 제도다. 1997년 1월 증권거래법 개정으로 25% 이상 지분을 보유하는 자는 발행주식총수의 50%+1주 이상을 의무적으로 매수하도록 했지만 M&A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 등 단점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운데)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자본시장 공정회복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연합뉴스

차등의결권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상
주식의결권 일률적용 기업자유 위협

"우리나라에 좀 독특한 거버넌스 문제가 있다. 원칙적으로는 1주 1의결권을 가져야 되는데 거버넌스가 왜곡이 되면서 어떤 사람의 1주는 0.5 의결권인데 어떤 지배주주의 의결권은 1주가 100의결권이 될 수도 있는 구조다" -윤석열 삼프로TV 발언

윤 후보가 20년 전 폐기처분된 제도 부활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처럼 1주 1의결권 원칙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학계에선 1주 1의결권 원칙은 유일한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는 해석이다. 서완석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개별 기업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자회사 확대 추구하는 기존법과 충돌
대주주 의결권 제한 경제민주화 연장

또 의무공개매입제도는 출자를 강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출자를 제한하는 공정거래법과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 공정거래법은 자회사 지분율 요건 완화(50%→30%)를 통해 일감몰아주기 등 내부거래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왔다. 이뿐 아니라 50%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게 되면  과점 주주로 간주돼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윤 후보의 1주 1의결권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화와 3%룰·다중대표소송제로 대표되는 경제민주화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특히 포이즌필, 황금주, 차등의결권제 등 모든 기업에 공통적 장치인 저비용 고효율의 방어 방법이 있는데도 융통성을 잃었다는 얘기다.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거래는 일반적이다. KB금융지주는 2016년 현대증권을 인수하면서 지배주주(주당 2만3182원)에 소액주주(주당 6737원)의 4배에 달하는 매입대금을 지불했다.

2016년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에 소액주주에 지불한 주식매수청구 가격(7999원)의 두배를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지불해도 큰 잡음이 없었다.

다만 최근 한샘 최대주주인 조창걸 명예회장이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약 7000억원을 받기로 한 것을 두고, 한샘 지분 9.23%를 보유한 2대 주주 테톤이 13년가량 장기투자한 주주로서의 권리가 침해됐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공정 구호 뒤에 숨겨진 '편가르기'
대주주 나쁜놈, 소수주주 좋은놈?

권재열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소수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이 분배되는 장점에도 다량의 주식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금조달비용이 인수합병으로 인한 효익을 넘어서게 되면, 다수의 상장사가 기존에 계획된 M&A를 포기하거나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합하면 윤석열 후보가 '공정'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기업지배구조 관련 공약 뒤에 가려진 실체는 대주주는 '나쁜 놈' 소수주주는 '좋은 놈'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교수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소수주주 중에도 '나쁜 놈'들이 즐비하다.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대표적이다"며 "블랙록, 뱅가드, 국민연금 등은 소수주주로 분류되지만 재벌보다 훨씬 힘이 강한 초재벌 기관투자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