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이야기] “나 밥 안 먹키여" 치매에 빠진 제주 하루방

[사단법인 한국노인복지중앙회 치매 환자 돌봄 수기] 치매 앓는 아버지 자신의 일터로 모신 요양원 간호사

2021-12-30     최영은 기자

 

제주도 소망요양원 신희자 간호사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2017년 7월, 자리돔을 드시고 장이 천공되어 수술을 하신 아버지는 점점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심해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알츠하이머형 치매 진단을 받고 약을 드시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저는 퇴근 후, 아버지 집에 들러 식사를 챙겨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하시는 어르신의 병원 진료를 갔다가 평소보다 1시간 늦게 아버지 집에 도착했습니다.

식탁 앞에 우두커니 앉아계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늘 엄하고 당당하며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날 아버지의 뒷모습은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저 나이 든 치매 노인의 모습이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얼른 밥 챙길게. 방에 강 이서(방에 그냥 계셔)”라고 말하고는 허둥지둥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숨죽여 울고 말았습니다.

며칠 뒤, 아버지께서 갑자기 “나 밥 안 먹키여(나 밥 안 먹을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무사 밥 안 먹젠 햄수꽈?(아버지 왜 진지를 안 드시려고 하세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아버지는 당뇨병이 있어서 식사를 안 했다가는 저혈당 증상이 올 수도 있기에 걱정됐습니다. 마치 커다란 망치로 맞은 듯했죠.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부랴부랴 가족들에게 연락했습니다. 다음날 큰고모가 작은고모와 함께 아버지 집에 오셨습니다. 큰고모는 “무사 오빠 마음에 아이들한테 섭섭한 거라도 이수꽈?(자식들한테 무슨 서운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영 허지 말앙 고라봅서.(밥 안먹고 골내지 말고 말씀을 해보세요.) 말을 해야 아이들도 알지 마씸(말씀을 해야 자식들도 알고 잘하지요.)”하고 여쭤보았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섭섭한 거 어서(섭섭한 것 없어)”였죠. 그러시더니 음료수를 한입 드시고 고모가 건넨 식사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혼자 밥 챙겨 먹는 거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 서귀포에 사는 큰 남동생과 막내 남동생 그리고 제가 돌아가며 아버지의 삼시세끼를 챙겨 드렸습니다. 며칠 되지 않아서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삶이 엉망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요양원에서 입소 어르신이 딸과 볼을 맞대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궁여지책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노인장기요양 등급 변경 신청을 했습니다. 기존에 아버지께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 5등급(치매)을 받았습니다. 등급 심사 결과 장기요양보험 4등급으로 시설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했죠. 그래서 아버지를 내가 근무하는 요양시설로 모셔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를 목욕시키면서 설득했습니다. “아버지 이번처럼 갑자기 밥 안 먹겠다고 하면 걱정돼서 나 일 못해. 아버지 그러니까 한번 가보자 응?” 하고 말을 건네자 아버지께선 “알아서(알았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2019년 5월, 아버지와 저는 함께 요양원으로 향했습니다. 동생들도 저도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물론 제가 일하는 곳이지만 우리가 살겠다고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요양원에서 잘 지내시고 계십니다. 어쩌면 저희를 위해서 살아주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어르신들과 지내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저에게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줍니다. 

옛 말에 "열 자식이 한 부모를 못 모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얼마나 더 아버지와 함께할지 모르는 시간들 앞에서 저는 건강했던 시절 아버지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와 맛있는 밥 먹기, 좋은 경치 보면서 이야기 하기, 영화 보기 등···.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점점 줄어들 테니까요.

비록 같이 살지는 못하지만,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