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경기부양책은 어쩌다 인플레이션을 불렀나?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합리적 의사 결정 위해 기회비용 감안해야 재난지원금 저축한 국민 대출로 주식 투자 내구재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고착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금융시장에서는 ‘공짜 점심’이 존재하기 어렵다. 어디선가 공짜로 점심을 준다고 하면 그 소문이 금방 퍼져나가 기회를 엿보고 있던 시장 참여자들이 ‘아차’ 하는 순간에 그 기회를 채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1대에 3000만원하는 새차가 부산에서는 3100만원에 팔린다고 하자. 부지런히 시장을 관찰하던 A씨가 서울에서 차 한 대를 사서 부산까지 운반해 팔면 100만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모두가 이 거래에 동참하면 서울에서 신차가 금방 동나 버린다.
재무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차익거래의 기회(arbitrage opportunity)'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위험을 거의 감수하지 않고도 이익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위의 예에서와 같은 실물 시장에서는 운반비와 세금 등 거래비용을 감안하면 차익거래의 순익이 거의 사라진다.
그러면 거래비용이 낮은 금융시장에서는 어떨까? 서울에서 1달러당 1190원하는 환율이 뉴욕에서는 달러당 1200원이라고 하자. 그러면 외환 투자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 뉴욕에서 매도할 것이다. 결국 서울에서는 달러값이 오르고 뉴욕에서는 달러값이 내려 환율은 두 곳의 가격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균형을 이루게 된다.
차익거래 즉 공짜 점심의 기회가 소멸하는 것이다. ‘공짜 점심이 없음’(no free lunch)을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기회비용이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포기해야만 했던 여타 선택지의 가장 높은 값어치를 뜻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 다니던 내가 치킨집을 열어 한 달 열심히 일해 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하자. 한 달간 지출한 제반 비용이 200만원이라면 치킨집의 한 달 순익은 매출액에서 비용을 차감한 300만원이 된다. 그러나 이는 회계적 순익(accounting profit)일 뿐이다.
내가 만약 치킨집을 열지 않고 이전 회사를 꾸준히 다녀 한 달에 월급으로 4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자. 그러면 기회비용을 감안한 경제적 의미의 순익(economic profit)은 회계적 순익에서 기회비용인 월급을 차감한 마이너스 100만원이 된다. 즉, 치킨집주인의 노동에 대한 기회비용을 포함시켜 경제적 순익을 계산하면, 치킨집 운영은 흑자가 아니라 적자가 난다.
위의 예와 같이 경제적 선택에 대한 합리적 의사결정에는 기회비용을 감안해야 한다. 문제는 기회비용이, 치킨집 운영 시 지출되는 전기료나 월세와는 달리, 눈에 보이는 비용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합리적 의사 결정이 숱하게 이뤄진다.
기회비용의 망각은 가계나 기업 등 개별 경제주체의 선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 정책의 담당자도 때로는 기회비용의 중요성을 잊어버린다. 선의(善意)로 무장된 집권세력의 정치적 의제(agenda) 달성에 앞뒤 안 가리고 충실히 봉사하는 정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기회비용이 보이지 않는다고 어떤 정책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추진하면, 그 정책의 선(善)한 의도가 민생을 파탄지경에 이르게 하는 악(惡)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비근한 예가 최근 가계를 위협하는 인플레이션과 향후 금융시장의 붕괴 가능성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자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전례가 없던 대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부족해진 예산은 국채를 발행해 빚으로 충당했다.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금리를 0% 수준으로 낮추고 양적완화(QE)를 시행했다. 이를 통해 전대미문의 규모로 국채를 비롯한 채권을 사들이고 돈을 풀었다.
정부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받은 국민들은 정부를 찬양하는 격앙가를 불렀다. 가계의 저축 규모가 사상 최대로 늘어났다. 예금이 은행으로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유동성이 채권과 주식에 투자되면서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주가지수는 금방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어느새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해 갔다. 시장의 상승세를 확신한 투자자들이 보다 위험도가 높은 소형주와 가상화폐로 몰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수익률 극대화를 노린 주식담보대출(margin loan)도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주식담보대출을 이용해 돈을 빌려 주식을 사면 투자금의 레버리지(leverage)를 몇 배로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돈 2000만원을 투자 원금으로 증권사에서 8000만원을 빌려 1억원의 주식을 샀다고 하자. 주가가 20%가 오르면 보유 주식의 가치는 1억2000만원이 된다. 2000만원의 이익을 봐 투자원금 대비 100%의 이익을 거두게 된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주택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가상화폐에 또 투자한다. 다른 투자자도 뛰어들면서 이들 시장 가격 또한 상승한다. 늘어난 자산가치가 주는 부의 효과로 냉장고도 바꾸고 새 차도 구입한다. 그러면 내구재 시장에서 가격이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한다.
그런데 주가가 내리면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주가가 20% 내렸다고 하자. 그러면 대출금의 담보가치가 8000만원으로 줄어든다. 이제 증권사는 마진콜을 낸다. 대출금을 보호하기 위해 담보를 더 내라 재촉하는 것이다. 마진콜에 부응하지 못하면 증권사는 주식을 강제로 매각한다.
그러면 대출금 상환 후 내게 남은 돈은 한 푼도 없게 된다. 투자원금 전액을 날린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헤지펀드와 같이 레버리지 사용을 즐기는 기관투자자에게 발생하면 어떨까? 실제로 이 같은 일이 지난봄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인 빌 황(Bill Hwang)의 아케고스(Archegos) 캐피털에 일어났다. 보유 주식 가격이 폭락하면서 빌 황은 부도가 났다.
현재의 금융시장 상황은 당시보다 훨씬 위태롭다. 정부가 푼 돈으로 고착화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과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돈줄을 죄고 금리를 인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인상되면 위험도가 높은 채권과 기술주 그리고 가상화폐의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 시장에서 손실을 입은 헤지펀드는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마진콜에 대응하기 위해 대형 우량주를 내다 팔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이들 대형주의 시세에 큰 영향을 받는 주가지수가 하락하면서 증권시장의 붕괴가 현실화할 수 있다. 경제의 선행지표로 알려진 증시가 붕괴하면 그 여파가 부동산시장으로 퍼지면서 금융시장 전체에 전방위적 후폭풍이 나타날 것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경기 확장 정책이 금융 붕괴를 결과하는 이러한 현상을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안정과 불안정의 아이러니’라 부른다. 경제를 안정시키려는 선한 의도로 시행한 정책이 금융시장에 버블을 부르고 종국에는 경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성급한 선심성 정책의 시행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