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 칼럼] 코로나19 최악 상황, 여야정협의체 만들어라
[성기노의 정치언박싱] 성급한 '위드 코로나'에 의료시스템 붕괴… 아픈 국민들 갈 곳 없어져 대선 후보들도 대책 경쟁 지양하고 함께 모여 실효적 대책 세워야
최근 필자의 한 지인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 피부가 찢어지는 찰과상을 입었습니다. 무심코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가 치료거부를 당했습니다. 그는 다른 병원 응급실에도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부 치료해 줄 수 없다는 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동네 성형외과를 찾았지만 대부분 성형수술로 특화된 곳이라 일반 찰과상 환자는 치료해줄 수 없다는 답에 발을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5~6시간이 지난 후 한 성형외과에서 치료를 해주겠다며 받아들여 주는 바람에 가까스로 봉합수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찰과상 등의 가벼운 환자들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코로나19에 확진돼 재택 치료를 받던 30대 임산부는 16곳의 전담병원에 입원여부를 확인했지만 거절당했고 결국 구급차 안에서 출산을 했습니다. 또 다른 출산예정 확진자도 코로나19 전담병원 산부인과를 찾았지만 ‘병상이 모두 찼다’는 말만 듣다가 10여 시간을 헤매다 겨우 병원을 찾아 출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는 코로나19 확진 신장병 환자들은 투석 병원을 구하기 위해 수백 통의 전화를 걸다 가까스로 응급실 바닥에서 투석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밖에 병상 배정을 기다리던 코로나19 확진자가 자택에서 숨지는 일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암 환자 수술 횟수가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국민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병에 걸리지만 않기를 바라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료시스템 붕괴입니다. 정부는 11월 24일 김부겸 국무총리를 통해 확진자 급증에 따른 첫 번째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김 총리의 첫 일성은 ‘재택치료’ 활성화였습니다. 병상이 없으니 재택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개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료지원의 한계를 국민들 ‘각자’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하고 준비되지 않은 미봉책이었습니다. 12월 19일 현재 재택치료자는 3만1794명에 달합니다. 지난 1일만 해도 1만명대(1만174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말이 재택치료이지 사실상의 ‘자택격리’이자 ‘방치’라는 게 야당의 지적입니다. 정부는 병상 부족 상황과 재택치료의 자택 완치율(95%)이 높다는 이유로 재택치료를 강행할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족 집단감염과 고령자, 기저질환자 위험성 등을 이유로 지금이라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기감염마저 의심되는 오미크론이 대세종이 될 경우 재택치료는 가족 간 감염은 물론 아파트 환기구나 배관을 타고 집단감염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재택치료 급증에도 환자가 찾아갈 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정부는 재택치료 환자가 증상에 따라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단기외래진료센터를 병원과 협의해 설치 중으로 현재 수도권 18곳, 비수도권 24곳에 설치가 완료됐습니다. 호흡기 질환자들은 초기 치료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재택치료 중 중환자 발생을 줄이려면 재택에 대기만 하도록 둘 게 아니라 한 번은 의사 진료를 받고, 증상에 따라 가까운 동네의원에서도 항체치료제 투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늘어나는 확진자 수는 전 세계적인 추세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이에 대응하는 병상확보와 의료지원은 오롯이 정부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체계적 대응은 체감되지 않습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6일 코로나19 상황과 관련해 “유행이 악화하는 경우 이달 중 약 1만명, 내년 1월 중 최대 2만명까지 확진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마치 남의 일 얘기하듯이 태연하게 의학적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 청장은 “현재의 신속한 확산세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비상대책 시행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비상대책이라고는 ‘또 거리두기 강화’밖에 눈에 들어오는 게 없습니다. 국민들의 놀라운 인내와 높은 시민의식 협조 외에 정부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최근 들어 이웃 일본은 이 같은 한국 상황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정치 방역’을 비꼬는 보도도 많습니다. 한국은 팬데믹 초기 선제적 코로나19 PCR 검사와 획기적 감염자 추적 시스템 등으로 전 세계에서 방역 모범국으로 주목받았으나, 최근 확진자 폭증으로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에 비상이 걸렸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한국 정부의 성급한 일상 회복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집권세력이 내년 3월 대선 승리를 위해 성급하게 ‘경제 회복’을 추진하게 됐고 그것이 부메랑이 돼 현재와 같은 총체적 난국을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재확산에 대응해 강력한 거리두기를 미적거리며 골든타임을 놓친 것도 대선용 ‘정치방역’ 때문이라는 진단도 나옵니다. 이런 진단에 대한 실증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대응이 너무 안일하고 ‘정치적’이었다는 합리적 의구심은 듭니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적 재앙입니다. 우리라고 피해갈 수 없습니다.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천재지변, 전쟁 등이 일어나면 그 책임의 최종 위치에 있습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문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곧바로 정부 정책으로 전파돼 실제적 실행력을 갖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K-방역’이라고 자화자찬했던 코로나 대책이 정치적으로 변질 왜곡된 측면은 없는지 청와대와 정치권은 냉정하게 점검해봐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호주를 방문해 ‘셀카’를 찍은 것에 대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시급한 외교 사안도 없는 호주까지 가서 SNS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찍은 셀카를 올린다”고 비판했습니다.
야당의 ‘폄훼’에 대해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입술이 붓고 터지면서까지 고생을 했다’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지만,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임기 말 ‘외유성 해외방문’이라는 고쳐지지 않는 관행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해 1월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국민들이 정부 정책에 말없이 따라왔지만 2년이 지난 현재 결과가 ‘참담한’ 것에 대한 분노와 정부 대책에 대한 불신이 문 대통령의 ‘셀카’마저 밉게 보인 측면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21일 KBS1 TV에서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11월 1일부터 시작한 ‘위드 코로나’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습니다. “사실 확진자 수 증가는 단계적 일상회복에 들어갈 때 미리 예상했던 수치다. 정부는 5000명 또는 1만 명 정도까지도 확진자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비를 했다”고 장담했습니다.
대통령의 자신감에 국민들도 위드 코로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위험해도 뭔가 탄탄한 대책이 있을 것이다’라는 정부에 대한 신뢰 그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타격에도 정부의 의료시스템은 붕괴 직전에 와 있다는 것이 드러나자 국민들의 배신감과 불신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그렇게 자신감을 내비칠 것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짧고 굵게’만 외쳐 희망고문만 줄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정부가 면밀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구체적 설명만 했어도 정부를 이처럼 불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문 대통령은 12월 16일 부랴부랴 사과를 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박경미 대변인의 ‘입’을 빌렸습니다. 물론 달갑지 않은 사과성명을 직접 읽으며 체면을 구길 대통령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모들이 만류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에게 그간의 상황과 정부의 정책판단 실책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용서를 구하는 ‘진정한 소통’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야 대선후보들도 코로나에 대한 정치적 행보를 지양해야 합니다. 여야는 현재 코로나19 대책을 무한대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고 실현 가능성도 없는 급조 대책들이 연일 발표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코로나19 해결을 위한 진정성 있는 대책인지, 아니면 오로지 대선 표를 노린 선심성 대책인지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윤 후보 직속 기구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대선을 앞둔 후보가 이 기구를 통해 어떤 ‘공약’과 정책을 내놓을지 대략 짐작이 갑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9일 방역지원금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한 것을 두고 “턱없이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재원’에 대한 고려는 없고 일단 더 주고보자는 생각입니다. 청와대는 당초 70만원이던 방역지원금을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100만원으로 올렸다는 점을 강조하며 여야의 코로나19 대책 경쟁에 숟가락을 하나 더 얹고 있습니다. 정밀하고 장기적 대응방안 수립 없이 일단 지르고 보자는 여야의 대책 남발은 국민의 또 다른 불신만 부를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는 국민의 생명이 걸린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병상 확보와 재택치료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시스템이 확실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또 다시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소상공인 등에 대한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번에 드러난 병상부족을 공적의료 시스템의 확충 기회로 삼고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 모든 시급한 문제는 정부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당장 여야 대선후보와 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수립해 운영해야 합니다.
코로나19는 정치적인 영역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이 걸린 생존의 문제입니다. 때마침 제3지대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는 19일 중앙당을 정식 창당하면서 “코로나19 감염증 재 확산에 따른 민생 악화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각 당 대선 주자가 참여하는 초당적 원탁회의 개최”도 제안했습니다. 정부와 여야 대선후보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밤을 새워서라도 실효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당장 병이 나도 갈 곳이 없는 세상에서 국민들은 언제까지 ‘아프지 말자’를 되뇌며 불안에 떨어야 할까요.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기노 전 일요신문 정치부장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고 창원고와 한양대,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석사(언론학)를 마치고 일요신문과 에너지경제 등에서 주로 정치 분야를 취재했다. 모 정치인의 언론특보로도 활동하며 정치현장도 경험한 바 있다. 2016년 인터넷신문 피처링(www.featuring.co.kr)을 창간해서 대표를 맡고 있고 플러스정치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정치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시민주권정치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주소는 newser@naver.co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