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팩] 임태희 노동개혁 업적, 박근혜가 되돌렸다?

[깐깐한 팩트탐구] 윤캠 합류에 맞춰 업적 부풀리기 인터뷰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1997년 도입 文 정부가 7월 노조법 개정해 폐지한 것 김종인표 노동 정책 맞물려 윤캠도 촉각

2021-12-12     이상헌 기자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달 25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무실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캠프 참여로 정계 복귀를 노리는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노동조합법과 관련한 업적 부풀리기성 발언을 내놔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문제의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임 전 실장이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정책'을 관철해냈으나, 박근혜 정부가 이를 원점으로 돌려세웠다'는 내용이다.

팩트경제신문은 '깐깐한 팩트탐구' 코너를 통해 이 주장을 검증했다. 그 결과 임 전 실장 발언은 '사실과 다른 자가발전'이었다.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1997년 노조법에 이미 도입된 것이며, 임 전 실장은 유예조치 해제와 타임오프제(time off,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도입했을 뿐이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별도 조직의 총괄상황본부장으로 윤캠에 몸담은 임 전 실장은 최근 주간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를 자신의 성과"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가 원점으로 돌린 것은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규정이 삭제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였다.

지난 8월 31일 현대제철 충남 당진제철소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노조원 등이 본사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타임오프제가 '귀족 노조' 빌미 줘
경총, 문제 해결 기대하지만 '글쎄'

임 전 실장은 노동부 장관 시절이던 2009년 7월,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타임오프제를 대안으로 지지했다. 타임오프제는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 지급을 금지하되, 노동조합과 관련된 활동을 한 시간 만큼만 임금을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당시 사용자측은 이를 '양날의 검'으로 받아들였다. 노조활동을 근무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는 빌미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올해 7월부터다.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4조 제1항은 "사용자 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급여를 지급받으면서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조 관련 활동만 인정받으면 집이든 휴양지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귀족노조의 투쟁'이 가능해진 셈이다. 반면 사용자가 이를 제한하려 하면 지배개입 행위로 간주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는다. 또 사용자에 대해서만 처벌을 규정한 노조법 81조는 노사간 불균형을 촉발시키는 대표적인 법안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채택, 노조전임자 급여 지원 금지 규정 삭제를 비롯해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을 확정했다. 그러면서도 경영계가 요구해온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처벌 제도 개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타임오프제가 시행된 지 8년,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지난달 30일부터 면제 한도 조정 절차에 나섰다. 노동계는 더 많은 노조 전임자를 두기 위해 면제 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경영계는 노조 업무를 전담하는 이들에 대한 급여는 노조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지난 7월 노조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마저 사라졌다. 

※ 용어 해설 : 타임오프제(time off, 근로시간 면제제도)

타임오프제는 노조 전임자가 임금 손실 없이 급여를 받으며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는 제도다. 노조법 제24조에 근거해 지난 2010년 7월부터 시행됐다. 노조 규모에 따라 99명 미만인 경우 최대 2000시간, 100~199명은 3000시간 등으로 정해져 있는데 조합원 수가 많을수록 면제 한도 시간도 늘어나는 구조다. 미국·일본에선 노동단체 운영을 위한 사용자측의 경비지출을 노동조합 결격사유로 보지만 국내법은 모든 비용을 사용자측이 부담하는 구조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에서 열린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김동연 전 부총리, 윤 후보, 김 전 비대위원장, 손경식 회장, 금태섭 전 의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김종인 만화책 기념회도 후원한 손경식
노조법 개정하려다 노동이사제 내주나
윤캠 전문가들 이중노동구조 악화 우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노조법 81조상의 부당노동행위 규정상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경식 회장은 최근 임 전 실장 직속 상관격인 김종인 위원장 일대기를 다룬 만화책 출판기념회를 후원하는 등 로비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재계가 헛물을 킨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김 위원장이 정의당과의 연정 조건으로 노동이사제를 넘겨주는 전략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어서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 의원 시절이던 2016년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인물이다. 또 그의 핵심 측근들 사이에선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노동부장관으로 하는 연정안은 어떻게 보느냐"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김 위원장이 주장하는 독일식 노동이사제는 근본적 사상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입장에선 지난해 통과한 공정경제 3법과 함께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마지막 단추가 될 수 있지만 주주자본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한국의 법제도와는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그동안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완화를 주장해온 윤 후보의 의견과도 충돌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12월 임시국회에서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해 대선 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어서 윤석열 캠프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윤석열 캠프 고용노동정책위원장인 유길상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심각한 상황에 근로자들의 대표성 등은 강화해야 마땅하지만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는 것 자체는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시스템 하에서는 좀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용어 해설 :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노동시장이 임금, 일자리 안정성 등 근로조건에서 질적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뉘어 있고, 두 시장 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해고 보호가 잘 되는 대기업, 정규직 등 1차 노동시장의 근속연수는 13.7년으로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 2차 노동시장의 근속연수 2.3년에 비해 약 6배가 긴 것으로 파악됐다. 또 월평균 임금은 1차 노동시장이 2차 노동시장보다 약 2.8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