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우먼] "나는 누드모델입니다"

33년 누드모델로 살아온 하영은 협회장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 하고 싶지 않아" 동료들 떳떳하게 일할 수 있게 협회 설립

2021-11-29     오수진 기자

[the우먼]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만의 길'을 걷고 있는 여성을 만난다. 역경 속에서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 [편집자주] 

"어떤 일이든, 어떤 분야의 일이든 당당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닐까요? 저는 남한테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하는 일이 손가락질 받을 일도 아니구요. 동료들이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33년 동안 발가벗는 일을 본질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이가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밝히고 활동했던 누드모델협회장 하영은씨.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시종일관 당당한 모습으로 이같이 말했다.

하영은 누드모델협회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작업실에서 팩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 옥지훈

1988년 생계가 어려워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던 누드모델은 이제 그의 전업이 됐다. 낮에는 무역회사 경리로 밤에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월급이 들어오는 어느날 가방을 통째로 소매치기범에게 빼았겼다고 했다. 

상경하면서 생계를 홀로 꾸려가야 했던 하씨는 가족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은 채 레스토랑에 자주 찾아오던 사진작가의 제의로 누드모델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됐다. 딱 한 번만 하자하고 했던 것이, 33년 인생을 함께 하고 있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탓에 연로한 어머니는 여전히 하씨가 누드모델 일을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전업으로 누드모델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누드모델협회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하씨가 명함을 내밀면 열에 아홉은 바닥에 떨구고 가는 이가 많았다. 

하씨는 "남에게 나를 '누드모델 하영은입니다'라고 소개하면 다들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면서 "그때마다 난 굉장히 난처했고, 그만큼 또 누드모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안 좋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남한테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 손가락질 받을 일도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두려웠다. 계속 이런식이면 어떡하지"라고 했다. 그런 고민들이 모여 누드모델협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씨는 누드모델을 시작하거나 하고 있는 이들에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당함이라고. 그는 "혹여라도 (모델일을 하다가) 친척이나 지인을 만나게 되면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당당해질수록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더 순수하게 보일 수 있어서다. 멈칫하거나, 도망가거나, 회피하면 그 모습이 순수하고 당당하지 못한 일이라고 바라보는 사람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하영은 누드모델협회장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옥지훈

- 누드모델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서울에 1987년에 올라와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레스토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필 그날 강도를 당했다. 달동네에 살았었는데 칼든 강도를 만나 전부 뺐겼다. 뺏기고 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서 보조를 해주는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오빠나 언니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돈을 빌렸으면 과연 누드모델을 했을까."

- 우여곡절도 많았을 거 같다. 

"처음에는 누드모델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이 나도 있었다. 저는 내성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모델 생활을 하면서 외향적인 부분이 생긴 것이다. 오빠 언니들에게 인사도 잘 못할 정도로 순한 성격이었다. 모델일을 죽기 살기로 딱 한 번만 한다는 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 그때는 진짜 딱 한 번만 하려고 했다."

- 당시 월급은?

"15만원이었다. 그때는 삶이 풍족했다. 지금이야 아르바이트도 많고 뭔가 다른 구멍이나 길이 있었지만, 그때는 찾을 수가 없었다." 

- 그때 살 길이 누드모델 밖에 없었나.

"레스토랑에 오는 작가선생님들이 나에게 권했다. 서로 작품에 대해 토론도 했다. 한 번 해볼래 하고 찔러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생각도 났다.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큰 금액이었다."

하영은 누드모델협회장은 33년 동안 누드모델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누드모델 크로키 작품. / 하영은

- 누드모델을 하려면 강단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며 모델 일을 하게 됐나.

"저뿐 아니라 모델들도 성격이 외향적이어서 모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 자체가 예술적인 것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벗는 용기가 없어서 나 역시도 맨 처음에는 말짱한 정신에 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저 같은 경우는 성격 자체도 내성적이긴 하지만, 때로는 외향적으로 활동하려고 한게 도움이 된 것이다. 모델 활동을 하다보면 짓궃은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이면 고소해야 할 상황처럼 입이 건 사람들이 많았다. 그럴려면 강단있게 행동해야 한다. 속으로 내성적이어도 겉으로는 센 척해야 한다. 겉으로 센 척해야 남들이 함부로 하지 않아서다.

- 누드모델도 직업인이다. 발전하기 위해서 각자의 노력을 할텐데. 좀 더 나은 모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다이어트, 발레, 연기, 각종 몸쓰는 일은 했다. 액션, 검도도 하고, 태권도, 무용 종류는 다 했다. 스포츠 댄스, 종류별로 다 했다. 베테랑처럼 한게 아니라 짧게. 1달에서 3~6개월 가량? 저는 몸쓰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는 하자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했다." 

- 영감을 주는데 도움이 됐나?

"표현하는데 좀더 자신감 있고, 여러가지 몸을 쓰는 것을 섭렵하다 보니 내가 표현하는 것에도 도움됐다. 크로키 모델을 하고 사진 모델하고 광고 모델하는 것에. 특히 도움이 됐다. 선의 아름다움, 인체의 모든 것을 알아갈 수 있기 때문에. 하나 하나 모든 것들을 저는 조금씩 담아 놨다가 저 나름대로 창작 표현을 하는 것이다."

- 의료용 인체 모형 제작에 도움을 줬다고 하는데?
 
"팔, 엉덩이, 치골, 산부인과 등 그런 모든 부위들을 몸을 뜬다. 인체가 크면 또 안되고, 너무 말라도 안되고 형태 틀이 넓어도 안되고 좁아도 안된다. 거의 꾸준히 해왔다. 원틀이라는게 있다. 한 번 만든 게 망가지지 않으면 계속 쓰는데 망가지면 또 가서 뜨고 하는 것이다. 원틀이 기계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진행하고 있다. 20년 전부터 처음 작업했다."

- 본인이 자원했나?

"처음에는 다른 모델이 했다가 등치가 크지 않고. 기본 조건에 맞춰서 제가 하게 된 것이다. 무조건 제가 맞는 사이즈라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조건이 맞았기 때문에 한 것이다. 

누드모델 작품집. / 옥지훈

- 누드는 사회의 왜곡된 시선이 있는데.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하고 있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당당함이다. 저는 모델들에게 말한다. 혹여나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친척, 지인을 만나거나 하면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더 당당해질 수록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더 순수하게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 멈칫하거나 도망가거나 회피하거나 하면 그 모습이 더 외설스럽고 순수하고 당당하지 못한 일이라고 본인이 스스로 판단했다고 보는 사람은 볼 수밖에 없다."

당당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계속 당당할 수 없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나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최면처럼. 당당해야 해 속으로 당당해야 해 당당해야 해. 계속 얘기를 하는 거다. 제가 30년간 벗어서 스스럼 없지 않겠냐고 묻겠지만, 그렇지 않다. 근데 그런 긴장을 안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떤 일이든. 어떤 분야의 베테랑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사람과 마주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잘 벗어야지 하는 것은 아니다."

-  누드모델 협회 회원은 어느정도?

"회원수는 1000명 이상이다. 다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나이따라 다르고 다른 직업이 있거나 쉬고 있거나 쉬다가 또 하는 경우도 많아서. 아직까지 탈퇴한 사람은 없어서 1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활발한 모델은 30~40명 가량. 나머지는 간혹. 전국적으로는 100~120명 정도다." 

- 요즘 성별, 나이 불문 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거나 보기 위해서 바디프로필을 찍는다. 과거와 달리 누드모델을 직업으로 보는 추세에 견줘 어떻게 생각하나. 

"누드모델이 아니어도 모두가 공감하는 거 아닐까.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아름다울 때를 남기고 싶거나 운동 열심히 했어도 나중에 달라질 수 있지 않나. 남겨두고 싶은 건 꿈 같은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