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구석기 법령] '4촌의 손자'가 무슨 죄?···현실 안맞는 특수관계인 규정

'6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 금융실명제 이전 제정된 해묵은 규정 경제공동체 실질에 맞도록 개정돼야

2021-10-31     이상헌 기자
2005년 3월 2일 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진=노회찬재단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사법제도는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시대 흐름을 읽어낼 줄은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긴즈버그

법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버린' 법은 사회와의 조화를 깨트린다. <팩트경제신문>은 재창간 기획 특집으로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법령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지지부진한 국회의 입법 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제는, 시대가 법을 바꿀 차례다. [편집자주] 

'6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을 경제공동체로 추정하는 특수관계인 규정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과거에는 실질에 부합했지만 오늘날엔 상식을 벗어나는 규정이라는 지적이다.

1974년 제정된 국세기본법 시행령에서 처음으로 '6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을 특수관계인으로 정하는 규정이 등장했고 이후 상법·공정거래법·자본시장법 등 다수의 법에서 이를 차용했다. 1974년 당시 규정은 다음과 같다. 

1974년 국세기본법 시행령 제20조

특수관계자란 ① 6촌 이내의 부계혈족과 4촌 이내의 부계혈족의 처 ② 3촌 이내의 부계혈족의 남편 및 자녀 ③ 3촌 이내의 모계혈족과 그 배우자 및 자녀 ④ 배우자의 2촌 이내의 부계혈족 및 그 배우자를 말한다.


이처럼 복잡한 친족 범위에 대한 축소 조정을 거친 뒤 정해진 것이 현재의 '6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 규정이다. 그럼에도 47년전 국세기본법 시행령 제정 당시와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친인척 간의 왕래가 거의 없는 현대엔 6촌에 해당하는 '4촌의 손자'나 '5촌 당숙의 자녀'는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상법에선 적발시 수천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 '사외이사 결격사유'가 된다. 아울러 직·간접적인 대출, 지급보증 등 자금지원 시 최대 5년의 징역 또는 2억원의 벌금을 물 수도 있다.

특히 이같은 특수관계인 규정은 민법보다 뒤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5년 3월 민법 개정에 따라 호주제가 폐지됐고 가족의 범위와 부양 의무 대상을 배우자 및 직계혈족, 형제자매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아버지쪽 기준 1촌부터 8촌까지 촌수 관계도. /교육부

전문가들은 특수관계인 규정이 금융실명제 이전에 도입된 것이기 때문에 민법 발전 속도보다 뒤쳐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재벌 형제자매 간에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 사례들은 특수관계인의 범위를 '6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으로 단정할 수 없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 해외사례와 비교해도 한국처럼 여러 법령에서 광범위한 친족 범위를 무조건적으로 포함하는 경우는 없다. 또 법령에 도입하더라도 친족의 범위는 직계가족 수준에 그친다.

예를 들면 일본은 배우자와 2촌 이내 혈족을 사외이사 결격사유로 삼고 있다. 주식대량보고 의무도 지배주주의 배우자에 한정한다. 미국은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상장규정에서 가족관계를 명시하는 가운데 친족기반 법령 규제 자체가 없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상무는 "특수관계인 규정에 따라 기업들은 연락을 하지 않거나 누군지도 잘 모르는 먼 친척관계까지 주식 보유 현황을 파악해야 하는 현실"이라며 "경제적 공동관계가 아닌 경우 특수관계인 범위에서 배제하는, 실질에 맞는 규제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