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리은행 DLF 재판 '안갯속'···금감원, 상품선정부터 따진다

법조계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놓고 공방 금감원 제재 조치 권한 위임 손 들어준 법원 앞으로 개별 사안 물고 늘어지면 2심 불투명

2021-10-21     이상헌 기자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여의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합뉴스

금융감독원과의 행정소송에서 승리를 거뒀던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대한 2심 재판이 안갯속으로 빠져들면서, DLF·라임·옵티머스 사태에 휩쓸린 금융사 CEO들의 연임까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해외금리연계파생펀드(DLF) 판매에 앞서 상품 선정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99%에 가까운 펀드를 동일 상품 찍어 내기 방식으로 진행했던 것이 재판의 핵심 쟁점인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이슈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DLF 판매로 500억원 이상의 투자자 손실을 야기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문책경고 조치가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 부장판사)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과 관련, 정은보 금감원장은 "어떤 의무와 규제 위반사항인지는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항소심 승소 의지를 내비쳤다. 

특히 정 원장은 "금융 관련 법령과 시행령을 포함해 법령상 여러 의무와 규제들이 있는데 1심 판결은 저희와 견해가 달랐고 2심에서 추가적 논의가 있을 걸로 보인다"면서 여운을 남겼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상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어디까지 봐야 하느냐가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다. 재판부는 1심에서 금감원은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사실만을 처분 사유로 삼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면서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금감원 처분 근거 미비 지적받았지만
항소심서는 개별 사안에 집중할 전망

재판부는 금감원이 앞서 제기한 5개의 위반 사실 중에 하나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해당 사실만으로 향후 3년간 임원 취임이 제한되는 문책경고를 받을 만큼 내부통제 마련 의무 위반을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만 정 금감원장이 "손 회장이 무엇을 위반했는지 개별사안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항소를 제기하면서 재판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감원의 반전 카드는 이번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의 질타를 받은 DLF 상품선정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재판부도 금감원 조치 사유 중 하나인 '사모펀드 출시 판매 관련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 가운데 다른 은행에서는 금리하락 추세 등을 고려해 출시를 보류한 고위험 해외금리연계파생펀드(DLF) 상품을 판매한 것 자체를 질타했다.

 

DLF는 금리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을 결정하는 구조다. 독일국채금리연계 DLF 상품제안 당시 행사가격(-0.20%)을 하회할 확률이 35% 이상이었으나 우리은행은 가능성을 극히 낮게 판단해 상품을 설계했다. 실제 2020년 8~9월 독일 국채금리는 -0.70%대까지 추락하면서 100% 손실이 발생했다. /금융감독원

금감원의 제제 내용을 봐도 우리은행은 최초 한 차례 상품선정위원회를 서면심의로만 진행한 뒤 동일한 자산을 기초로 한 유사한 구조란 이유로 관련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동시에 '위원 투표 결과 조작'과 '평가표 위조' 행태도 난무했다.

예를 들면 우리은행은 2017년 8월 이후 신규 출시한 해외금리연계 DLF 상품 360개 중 357개(99.2%)에 대한 상품선정위원회나 공정가액평가실무협의회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먼저 출시된 상품과 유사한 구조의 상품이라 하더라도 시장환경의 변화 등에 따라 상품에 내재된 위험이나 불완전판매의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상품출시의 적정성에 대한 검토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채 상품선정 절차를 생략하고 상품출시를 지속했다.

특히 2019년 5월경 독일국채금리연계 DLF의 경우 기초자산인 독일국채금리의 하락으로 손실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도 상품의 손실배수(최대 333배)를 높여가며 신규상품을 출시했다. 이 결과 '원금 100% 손실'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독일금리연계 DLF에 대한 상품선정위원회에서 A부 소속위원이 상품출시 '반대'의견을 표명하자, 상품출시담당자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B부 직원으로 위원을 임의로 교체해 '찬성' 의견을 받아낸 조작행위도 문제가 됐다. 결과 우리은행 DLF는 ‘위원회 9명 중 9명 참석, 찬성 100%’로 처리돼 상품선정위원회를 통과했다.

준수 의무 위반으로 처벌 어렵지만
흠결 문제로 접근하면 중징계 가능
진옥동만 빠져나간 형평성 문제도

다만 재판부는 "현행 금융사지배구조법령 아래에서는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준수의무' 위반으로 금융회사나 임직원에 대해 제제조치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의 의견도 일치한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 교수는 "법령은 내부통제 기준을 정해야 한다면서 마련 의무만을 명시했기 때문에 '준수'의무라기 보긴 어렵다"며 "내부통제기준 자체의 '흠결'을 문제로 처분했다면 중징계 효력은 인정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법원이 작성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은행과 원고들이 내부통제를 소홀히 하였는지 여부는 제재사유도 아니고 재판에서 문재된 쟁점도 아니다"라며 "지배구조법령은 금융기관 내부통제의 기준이 되는 규정에서 내부규정에 반드시 포함될 내용이 흠결돼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4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투자자 교육 플랫폼 '알투플러스' 오픈 기념회에 참석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재조치의 처분권을 둘러싼 논쟁도 우리은행에 유리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은행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과 권한 위탁에 관한 법을 근거로 "금감원엔 상호저축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권한밖에 없기 때문에 처분권자는 금융위원회"라는 주장이다. 반면 1심은 "금융사 지배구조법은 금융위원회가 금감원에 은행임원 제재 조치 권한을 위임할 수 있도록 한 근거 규정"이라고 해석했다.

금감원이 2심에서 승소할 경우 손 회장을 비롯한 일부 금융사 CEO들이 '문책경고'에 걸려 재취업이 제한되는 형평성 문제가 남아 있다. DLF, 라임, 옵티머스 등 각종 금융사고로 금감원으로부터 징계를 받거나 징계를 앞둔 전현직 CEO는 함영주·지성규 하나금융 부회장과 금융투자협회장인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등 10명에 달한다.

다만 라임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은 지난 2월 펀드 판매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 회장에겐 '직무 정지'를, 진옥동 신한은행장에겐 '문책 경고'를 각각 통보했다가 이후 열린 3차 제재심에서 징계 수위가 모두 한 단계씩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주의적경고'에 머물며 한결 자유로운 입장이 된 것이다.

앞서 판결에서도 드러났듯 금융위가 현재로선 이들 CEO에 대한 최종 처분권자다. 금융위는 손 회장 소송에 대한 2심 판결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내부통제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는 등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