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복마전 막으려면 내부고발자 보상 강화해야
내부고발자 보호하는 美 '다드-프랭크 개혁 법안' 성공적 효과 한국도 '공익신고자 보호법' 있으나 미비한 수준
1997년 가을 우리나라에서 외환위기가 본격화되자 국제금융기구(IMF)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라 요구했다. 해외투자에서 큰 손실을 본 은행과 종금사가 타겟이 됐다. 금융감독당국은 자산실사를 벌여 문을 닫을 금융기관을 가려냈다.
은행이나 종금사가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문을 닫으면 직원들이 직장을 잃을 뿐만 아니라 임원들은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줄줄이 감옥살이해야 했다. 심지어는 민사소송을 당해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리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금융기관이 사형선고에 해당하는 영업정지를 면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 돼야 했다. 자기자본은 자산가치에서 부채를 차감한 몫이므로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려면 부실자산을 감춰야 했다. 파생금융상품을 사용하면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몇 년에 걸친 외환스와프(FX swap) 계약을 해 부실자산을 해외 금융기관에 넘긴 후, 초기에 많은 현금을 받아 일단 살아남고, 계약 후반부에는 손실을 보면서 갚아가는 방식이었다. 해외 금융기관은 안전한 국채를 담보로 잡고 높은 수수료를 부과해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비슷한 유형의 거래가 대부분 사정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적발돼 무산됐지만, 2001년 그리스 정부는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유사한 형태의 파생상품 거래를 해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유럽연합(EU)에 가입할 수 있었다. 이 거래로 골드만삭스가 올린 수익이 8,000억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 텍사스에 소재했던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Enron)사는 2001년까지 6년 연속으로 경제 매거진 포천(Fortune)지가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뽑히며 승승장구했다. 한 때 직원 수가 3만명에 육박했고 매출액이 100조원을 넘었다.
그런데 2000년 가을에 거액의 손실을 은폐하고 부채를 은닉한 회계부정이 밝혀졌다. 그 이듬해에는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엔론의 회계부정을 적발할 책임이 있었던 당시 세계 5대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Arthur Andersen)도 문을 닫아야 했다.
그 이후 엔론 직원들이 전기 가격 조작에 가담하고 임원들은 친지들에게 부당한 특혜를 주는 등 추악한 거래들이 속속 드러났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내 부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직원들이 경고음을 울렸음에도 사법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2001년 엔론의 회계부정 스캔들은 9·11 테러로 휘청이던 세계 금융시장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후 미국 경제와 증시는 극심한 부진에 빠져들었다. 이로부터 미 의회는 2002년 사베인즈-옥슬리(Sarbanes-Oxley)법을 통과시켜 회계 관행을 개혁하고 기업 책임을 높이려 했다.
이 법은 특히 기업 내부 불법 행위와 비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내부고발자(whistle-blower)’를 보호하는 조항을 마련했다. 엔론 스캔들이 금융불안으로 확산된 원인 중 하나가 내부고발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보호하는 제도의 미비에 있었다고 본 것이다.
문제는 이 법에 따른 내부고발자의 보호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법에 기반해 회사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내부고발자가 법원에서 승소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00년대 중반 부동산 시장에 거대한 버블이 형성됐다.
월가 금융기관들은 주택담보채권과 관련된 각종 파생상품을 이용해 수익을 내기에 급급했다. 숱한 복잡한 금융 거래들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인 ‘그레이 에어리어(grey area)’에서 이뤄졌지만 그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직원의 내부고발은 많지 않았다.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지면서 위험도가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과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가 무분별하게 이뤄졌다. 결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인상하자 부동산 버블이 붕괴됐고 서브프라임 위기가 촉발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많은 금융기관들이 문을 닫았고 수천만명이 직장을 잃었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금융부실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벌받은 금융기관 경영진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월가 앞마당에 텐트를 치고 월가 거대 금융기관들을 해체하라는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을 펼쳤다.
이에 새로 집권한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도드-프랭크(Dodd-Frank) 개혁 법안’을 마련해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리스크 테이킹과 파생상품 거래를 제한하고 금융시스템 안정성과 소비자 보호를 제고하려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했다는 사실이다. 고발자 범위를 외부로 확대해, 법 위반 사실에 대한 원천 정보를 보유한 누구라도 제보할 수 있도록 했다. 고발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강제해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정부가 위반 기업으로부터 벌금 등 형태로 회수한 금액 10~30퍼센트를 지급하도록 했다.
이러한 강제 보상제도를 통해 증권거래위원회가 지급한 상금의 규모는 놀랄 만하다. 2012년 첫 번째 보상이 이루어진 이후 현재까지 지급된 상금의 총액은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작년에는 한 명에게 무려 1억1400만 달러 (1368억원)가 지급되기도 했다. 올해 지급된 보상금 최고액은 1320억원에 달했다.
미 SEC는 특히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을 엄격히 금지하는 한편, 변호사를 통해 익명으로도 제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SEC 홈페이지에는 내부고발을 전담하는 법무법인들이 현재 성업 중임을 알 수 있다. 역사를 거치면서 보완하고 강화된 내부고발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최근 페이스북이 자사 이익 위주로 알고리듬을 운용했다는 내부 직원 폭로도 가능했다.
우리나라도 2017년도에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야당의 한 당직자가 이 법에 의한 보호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도드-프랭크 법안에 비해 미흡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상제도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이나 대기업 불법행위에 대해 인적 처벌 위주로 이뤄지는 관행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회 전체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 대규모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중 상당 부분을 공익제보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부 특권층이 부당한 방법으로 사회의 부를 가로채는 복마전 같은 비리를 방지할 수 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