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통령도 바꿨는데, 치매 병명 개정은 왜 안될까?

병명 개정 공모전을 마무리하며...

2021-09-10     김현우 기자
치매 환자./ 픽사베이

치매는 어리석다는 의미로, 부정적인 뜻을 내포한다

우리나라와 함께 한자권 국가에 속하는 일본·대만·중국·홍콩이 치매 병명 개정을 결정한 공통 이유다. 국내에서 이미 개정을 마친 뇌전증·조현병·한센병도 각각 간질·정신분열증·나병에서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기존 병명의 한자 뜻이 부정적이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두고 치매 관련 기관의 한 관계자는 "그들(한국을 제외한 한자권 국가)은 한자를 글로 쓰니까 눈에 바로 읽힌다. 그래서 바꾼거고, 우린 한글을 쓰니 괜찮지 않겠냐"고 한다. 국가 치매 복지정책을 다루는 실무자가 한 말이다. 이 얘기를 듣고 순간 머릿속에 영화 속 대사와 함께 무언가 떠올랐다. 

멧돌 손잡이가 빠진 걸 두고 뭐라 하더라?

치매 병명에 대한 취재를 하다보면, 황당한 답변을 듣는 경우가 많다. 국회 한 고위 관계자는 "일본은 돈이 많아서 병명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코로나19 대확산 상황에 가장 중요한 곳,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한 취재원은 치매 병명 개정이 어려운 이유를 국민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는 "국민 반응이 없다. 치매 병명 개정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치매 병명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한 달이 지나 조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국민 43.8%가 병명에 대해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19세 이상 일반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국민 3000여명이 모여 제안한 다양한 치매 대체 병명 

올해 9월 기준, 국민 3000여명이 팩트경제신문에 치매 대체 용어를 제안했다. 본지는 지난 8월 6일부터 9월 13일까지 치매 병명 개정을 위해 대체 병명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동심증·귀향증·동백증 등 다양한 대채 병명이 응모됐다. 공모전은 13일에 끝나는데, 이 시점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걸 왜 우리가 하고 있지?" 

언론사가, 그것도 경제지가 치매 병명 개정 캠페인을 한다. 못 할건 없다. 그런데 정작 치매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단체들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각 부처에 전화를 걸어 치매 병명 개정 캠페인에 대해 설명하면, 반응은 심각하게 미지근했다. 하다 못해 "이미 익숙해진 단어를 귀찮게 왜 바꾸냐"는 말도 들었다. 

물론 병명을 개정 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수많은 시간과 예산이 투입된다. 병명 코드도 바꿔야 하고, 치매 학계가 참여해 대체 병명과 병과의 연관성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개정 이후 사회적 정착을 위한 프로그램 진행 등 할 일이 태산이다. 

"기자님... 죄송한데..이건 이래서 어렵구요.."

치매 관계 부처에 전화를 걸 때마다 그들은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아니, 치매 병명 개정 캠페인을 한다고 입을 떼자마자 목소리가 안 좋아졌다.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치매 병명 개정을 왜 안하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당장 개정 하자는 것도 아니다. 

긴 마라톤을 함게 걸어가자는데도 적극적인 단체는 드물었다. 실망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될지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관련 부처들은 반 포기 상태였다. 

이 와중에 기자를 더 힘들게 만든건, 치매라는 병명을 우리에게 수출한 일본만이 호의적이었단 사실이다. 주한 일본 대사관이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사관 관계자는 캠페인에 관한 내용을 듣자 마자 본인 일인 듯 흥분하며 일본의 개정 사례를 신나게 설명했다.   

병명 개정, 기다리지 말고 국민이 나서자

치매 복지 선도 국가인 일본은 국민이 나서서 치매 환자의 인권과 권리를 얻었다. 병명 개정도 국민의 관심도가 높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하다못해 치매에 걸린 노인이 길거리를 '배회'한다는 말도 부정적이라며 못 쓰게했다. 치매 단체가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니, 후생노동성은 알겠다며 배회 용어 사용 자제 조치를 내린다. 

일본 워킹 그룹이니, 인지 극복 아름다운 노래 교실이니 무슨 치매 단체가 그리도 많은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어르신이 대다수인 마을엔 현수막까지 걸어두고 실종 예방 훈련까지 매달 한다. 적극적이다. 결국 그들은 한국 뿐만 아니라, 외신들도 주목하는 치매 극복 모범 국가가 되어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주한 일본 대사관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인은 어떤 불의가 생기고 그 불의에 대해 사회 구성원 등 다수의 이해관계가 성립되면, 마치 전쟁이라도 불사할 만큼 불도저처럼 못 참고 달려든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그는 이번엔 예시까지 들면서 "세월호 사건을 봐라. 국민은 분노했고 심지어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 수도 한복판에 캠프를 만들고 정치적 이슈로까지 남았다. 대통령이 잘못을 하니 국민이 나서서 촛불 하나로 세상을 바꿨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치매 병명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만약 국민의 다수가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고, 이것을 불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병명이 개정되는 건 시간 문제일 것 같다. 일본을 그토록 싫어하는 민족인데, 왜 일본인이 만든, 그것도 부정적인 뜻이 담긴 병명을 그냥 쓰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전 축구할때 한국이 지면 욕부터 하지 않냐"라는 말을 남겼다. 

어리석을 치(癡), 어리석을 매(呆). 반인권적이다. 거기에 쿠레 슈우조라는 일본인이 그것도 일제시대에 만든 이름을 왜 우리만 유일하게 사용해야 할까. 첫 치매 병명 개정안이 나온지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한 번 바뀌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두 번은 못 참을 것 같다. 

13일까지 병명개정공모전은 이어진다. 60초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팩트경제신문이 진행하는 치매병명개정 공모전 포스터./ 팩트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