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춘의 바둑이야기] ‘별들의 전쟁’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프리뷰

여자조, 최정9단 독주 멈춘 조승아4단 기대 한몸에 시니어조, 유창혁 꺾은 이창호 20번째 본선에 진출 본선, 치열한 한중대결 예상···백홍석 “올핸 해볼만”

2021-08-29     유경춘 바둑평론가
20번째 삼성화재배 본선에 출전하는 이창호 9단.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별들의 전쟁’ 혹은 ‘꿈의 무대’라 불리는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본선에 출전할 국내 기사들이 확정됐다.

25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국기원에서 열린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국내선발전 마지막 날 경기에서 이창호 9단, 조승아 4단 등 9명이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삼성화재배 예선은 그동안 세계 각국 기사들이 한국에 모여 오프라인 대국으로 겨루는 통합예선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작년과 올해는 국가별 선발전으로 대체됐다.

올해 국내선발전에는 총 214명이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3개 그룹에 배정된 9장의 티켓을 놓고 온라인 대국으로 경쟁했다. 일반조 7장, 여자조 1장, 시니어조(만 45세 이상) 1장이다.

일반조에서는 이동훈 9단(23), 안성준 9단(30), 윤찬희 9단(31), 김승재 8단(29), 이창석 8단(25), 한승주 7단(25), 설현준 6단(22)이 예선을 통과했다. 여자조는 조승아 4단(23), 시니어조는 이창호 9단(46)이 본선에 올랐다. 이들 중 윤찬희, 한승주, 이창석, 설현준, 조승아는 대회 첫 본선진출이다.

2021 삼성화재배 국내 선발전의 눈여겨볼만한 점을 짚어봤다.

 

바둑여제 최정 9단을 꺾고 본선에 진출한 조승아 4단. /사진=한국기원 제공

조승아, 마침내 최정을 뛰어넘다

올해 여자 바둑계 판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던 것은 조승아 4단의 돌출이었다. 일찍부터 유망주로 각광받아 왔으면서도 유독 입단대회에 약해 프로 진출이 늦었던 조승아가 올해 드디어 폭발했다. 8월 25일 현재 53승 10패의 경이적인 성적. 이는 남녀 기사와의 대결을 모두 더한 기록이다.

국내 여자 바둑계 판도는 최정 9단(25)의 독주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오유진 7단, 김채영 6단과 함께 ‘트로이카 체제’라 불렸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 국내랭킹 17위(여자기사 중 랭킹 100위 안은 최정이 유일하다)에 자리하고 있는 최정은 공공연히 삼성화재배나 LG배 등 세계대회 우승이 목표라고 할 정도로 세계 정상급 기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당연히 다른 여자 기사들과는 기량 차이가 커서 어쩌다 한번 지는 게 뉴스가 될 정도였다.

그런 판도를 무너뜨리고 뒤집기를 시도하는 기사가 조승아다. 조승아는 삼성화재배 결승이 있기 전 최정과의 두 번의 대국에서 이미 가능성을 보여줬었다. 여자바둑리그와 IBK기업은행배 4강에서 대등하거나 앞선 내용을 보여준 것. 두 판 모두 막판 역전패로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팬들에게 ‘조승아는 다르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맞이한 세 번째 대국, 삼성화재배 선발전 결승에서 마침내 최정을 넘어선 것. 최정으로서는 뼈아픈 패배다. 모든 기전이 다 중요하지만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 그것도 본선을 목전에 두고 당한 일격이어서 더 아팠을 것이다. 최정과 조승아의 앞으로의 대결이 더 흥미진진해질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삼성화재배 국내선발전 결승전 전경. /사진=한국기원 제공

이창호, 유창혁 꺾고 20번째 본선에

한 장의 티켓이 걸린 시니어조에서는 이창호 9단이 유창혁 9단을 결승에서 따돌리고 2년 연속 삼성화재배 본선 무대 진출을 확정지었다.

97∼99년 삼성화재배 3연패를 달성했던 이창호 9단은 이날 승리로 20번째 본선 진출을 확정지으면서 이 대회 본선 최다 진출 기록을 경신했다.

삼성화재배 시니어조는 만 45세 이상 기사들에게만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데 75년생인 이창호 9단은 작년부터 시니어조 예선에 출전하고 있다. 이번 예선에서는 김동엽, 정대상, 김일환 9단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랐는데 결승 상대는 전성기 적 라이벌 유창혁 9단. 이 레전드 간의 144번째 대결에서 이9단이 유9단에게 192수만에 불계승을 거두고 본선에 올랐다. 둘 간의 상대전적은 이9단 기준 96승 48패가 됐다.

 

이창호 9단(왼쪽)과 유창혁 9단이 온라인 대국을 통해 144번째 대결을 펼치고 있다. 통산 전적은 96승 48패가 됐다.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韓·中 맞대결, 예상은?

국내선발전을 통과한 9명은 시드를 받아 본선에 직행한 신진서, 박정환, 신민준, 변상일, 김지석 9단과 함께 한국을 대표해 10월 20일 온라인으로 개막하는 본선32강 무대에 출전한다.

본선에는 전기 4강(커제, 신진서, 양딩신, 셰얼하오), 국가 시드 8명(한국 4, 중국 2, 일본 2), 와일드카드 1명이 합류한다. 국가 시드는 한국의 신민준, 박정환, 변상일, 김지석 9단, 중국은 미위팅, 셰커 9단. 일본은 미정이다. 

2014년 김지석 9단 우승 이후 삼성화재배에서는 중국바둑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세돌 9단 이후 세계 일인자 타이틀을 물려받았다는 커제 9단이 삼성화재배에서 강세를 보였다. 

커제는 2015년 첫 우승을 차지한 이래 2016년, 2018년, 2020년까지 4회에 걸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특히 지난해 신진서 9단과의 결승전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결승3번기 제1국 21수 시점에서 신진서 9단의 마우스 선이 오작동하면서 얼토당토않은 1선에 착점이 되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착수는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규정에 따라 그대로 대국이 진행됐고, 결국 한수 쉰 꼴이 된 신진서가 패했다. 그리고  이 데미지가 다음 대국까지 이어져 커제가 2-0으로 손쉽게 신진서를 제치고 우승컵을 가져갔다.

올해 삼성화재배도 한중간의 치열한 격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시드를 받은 5명 외에도 자국 내 선발전을 거친 7명이 추가로 본선에 진출한다. 현재 선발전이 한창 진행 중인데 판팅위, 롄샤오, 자오천위,  쉬자양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기사들의 예선 통과가 유력하다.

바둑TV에서 이번 선발전 해설을 맡은 백홍석 9단은 “중국 기사들의 층이 두텁긴 하지만 한국도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졌다. 예전엔 박정환, 신진서 9단에게만 의존하는 형태였다면 최근엔 LG배 우승의 신민준, 세계랭킹 1위라 평가받는 신진서와 두 차례 결승에서 연속 풀세트 접전을 벌인 변상일 등이 가세했다. 한국바둑이 질적인 면은 물론 양적인 부분에서도 중국에 별로 꿀릴 게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커제가 대단하긴 해도 그 뒤를 받치는 양딩신이나 미위팅, 셰커는 커제와 함께 정점을 넘어선 느낌을 준다. 여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인 구쯔하오가 개인 사정으로 자국 선발전에 출전하지 못한 것도 우승을 노리는 한국 기사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의 통산 우승 횟수는 한국이 12회로 최다 우승 횟수를 기록하고 있고 중국이 11회, 일본이 2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삼성화재해상보험(주)이 후원하고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의 우승상금은 3억원, 준우승상금은 1억원이다.  

유경춘 바둑평론가

대학졸업 후 첫 직장인 주간바둑신문 입사 이후 줄곧 바둑계에서 바둑전문기자로 활동해왔다. 월간 바둑세계 편집장, 넷마블바둑 컨텐츠팀장 등을 거쳐 현재는 (사)대한바둑협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