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숏커트' 공방, 외신들도 비판···정치권 "국가적 망신"
짧은 머리 이유로 온라인서 '페미니스트' 공격 외신 "韓성평등 해결하려면 정면으로 다뤄야" 장혜영 "침묵한다면 비난에 동조하는 것" 여가부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혐오는 안돼"
도쿄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 모양을 둘러싼 공방이 주요 외신에까지 보도되며 논란이 확산되자 여성가족부가 혐오 행위를 멈출 것을 호소했다.
최근 안 선수를 향해 온라인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안 선수가 짧은 머리 모양을 하고 여대에 재학 중인 점, '웅앵웅' '오조오억' 등 일부 여성 중심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쓴 적이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안 선수를 페미니스트라고 공격하거나 비방하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잇따라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현재 도쿄올림픽에서 경기를 이어가고 있는 안산 선수에게 직접 SNS로 메시지를 보내 "페미 논란을 해명하라"거나 "메달을 반납하라"고 요구하는 등 도 넘은 악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9일(현지 시각) 미국 폭스뉴스는 '한국의 금메달리스트가 머리 길이 때문에 온라인 반페미니스트 운동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안산 선수가 올림픽 기록을 깨며 2개의 금메달을 확보했지만, 한국의 반페미니스트 운동이 20세 선수를 비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딴 한국 양궁 선수의 짧은 머리가 반페미니스트들을 자극했다"고 보도하면서 안산을 향한 공격이 "온라인 학대"라고 칭했다. 이어 이같은 논란의 배경에는 젊은 한국 남성들 사이의 반페미니즘 정서가 있음을 전했다.
BBC 서울 주재 특파원인 로라 비커도 "이번 공격은 자신들의 이상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을 공격하는 소수 인원의 목소리"라며 "한국이 성 평등 문제와 씨름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은 한국에서 더러운 의미의 단어가 돼버렸다"고 일침했다.
정치권도 안산 선수 보호 동참
이처럼 안산 선수를 향한 공격이 이어지자 선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심상정, 류호정, 백혜련, 장혜영 의원 등 선수를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혐오를 멈출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안 선수의 사상을 검증하고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며 "외신에서는 우리 선수들의 불굴의 투혼과 노력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안 선수가 온라인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적 망신 사태. 부끄럽고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 같지도 않은 말로 선수를 비방하는 이런 행위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대한체육회·양궁협회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수를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그는 "아무리 자기 실력과 능력으로 올림픽 양궁 금메달을 따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회에 만연한 이상, 이렇게 숏컷을 했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실력으로 거머쥔 메달조차 취소하라는 모욕을 당한다"며 "이게 바로 낯뜨거운 성차별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평소 2030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없다는 지론을 퍼뜨리시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님께 요청한다"며 "자기 능력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쥐고 국위를 선양한 안산 선수에게 숏컷을 빌미로 가해지는 메달을 취소하라는 등의 도를 넘은 공격을 중단할 것을 제1야당의 대표로서 책임있게 주장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대선 준비 때문에 바쁜데 정의당에서 저한테 뭘 입장 표명하라고 요구했던데 정의당은 대선 경선 혹시 안하시나"라고 맞받아쳤다.
이 대표는 "다른 당들은 대선 떄문에 바쁜데, 정의당은 무슨 커뮤니티 사이트 뒤져서 다른 당 대표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준석이 무슨 발언을 한 것도 아닌데, 커뮤니티 사이트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결국 여성가족부도 "혐오 멈춰달라"
결국 여성가족부가 입장을 냈다. 여가부는 30일 출입기자단에 "최근 스포츠계와 정치 영역 등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성 혐오적 표현이나 인권 침해적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짧은 입장문을 냈다.
29개 여성단체도 이날 '페미니스트니까 금메달 반납하라는 한국사회, 누가 만들었나'라는 제목의 공동논평을 내고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와 같은 정치인들은 지난 4월 재보궐선거 여론조사 결과에 나타난 20대 남성의 투표 행태에만 주목하고 연일 반페미니즘을 내건 발언을 하며 성평등 정책을 흔들고 공론장을 어지럽혔다"면서 "정치권이 나서서 젠더정책을 '여성우대정책으로 페미니즘을 '남성혐오'로 왜곡하는 동안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는 홍보물 이미지에 사용된 특정 손가락 모양이 '남성 혐오'의 상징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낙인과 여성혐오의 확산 책임은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있다"며 "여성혐오를 포함해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에 기생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치를 멈추고 이 사태에 대해 제대로 응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