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국가책임제 4년] ③ 일본에서 가져온 병명 '치매', 정작 그들은 '인지증'으로 바꿨는데...

일본의 정신의학자, '쿠레 슈우조'가 지은 이름 치매, '어리석다'는 의미로 "부정적인 이미지 강해" 병명 개정안 2건, 현재도 국회에서 수 년째 '계류 중'

2021-06-10     김현우 기자

'치매' 병명 개정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어리석다'는 부정적인 의미에다 일본에서 들여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치매(癡呆)'라는 병명은 일본의 정신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쿠레 슈우조(呉 秀三)'가 지은 이름이다. '디멘시아(Dementia)'라는 라틴어 의학용어의 어원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어리석다'라는 뜻을 내포한 '치매' 병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점을 문제삼아 지난 2004년부터 '인지증(認知症)'으로 변경한 상태다. 정작 우리는 아직 '치매'를 쓰고 있다.

앞서 언급한 치매를 뜻하는 '디멘시아'라는 용어는 서기 600년경 처음 등장했다. 세비야의 대주교였던 성 이시도르가 그의 책 '어원학'에서 '디멘시아'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이후 1797년, 프랑스의 의사 '필립 피넬'이 디멘시아를 의학용어로 채택하면서 지금까지 쓰여지고 있다.

'디멘시아'는 '박탈', '상실'을 뜻하는 접두사 'de'와 '정신'을 의미하는 'ment', 또 '상태'를 지칭하는 접미사 'ia'의 합성어다. 이를 연결해 해석하면 '정신이 부재한 상태'를 뜻한다. 

지금의 ‘치매’는 디멘시아(dementia)를 일본에서 번역하면서 비롯됐다.

일본에서 온 용어 '치매', 시급한 병명 개정

'치매'는 일본에서 건너온 ‘癡呆’를 우리 발음으로 옮긴 것이다. 한자 문화권에선 같은 한자라도 중국,일본 등 나라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른 경우가 많다. 국내에선 '치매'라고 읽고, 일본에서는 '치호우(ちほう)'라 발음한다. 중국에선 '치따이(chīdāi)’로 소리낸다.

‘癡呆’에서 癡는 ‘어리석을/미련할 치’이며 呆는 ‘어리석을/미련할 매’로,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것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癡는 ‘병들어 기낼 녁(疒)’과 ‘의심할/헛갈릴 의(疑)’로 이뤄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疒'은 병든 사람이 침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疑는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과 글을 형상화한 것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길을 헤매는 노인, 혹은 의심하고 있는 노인을 표현하고 있다.

疒과 疑가 모여 만들어진 癡는 공간 기억력이 떨어져 길을 잃고 헤매는 증상과 현상과 의심이 지나쳐 병적 망상을 보이는 치매의 일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痴는 癡를 줄여 쓴 것으로, 병들어 기댈 녁(疒)과 ‘알 지(知)’로 이루어져 ‘지능이 병들어 병상에 누워있다'는 뜻이다.

呆는 보자기에 싸인 어린아이 또는 ‘사람이 기저귀를 차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상형문자로 정신 연령이 어린아이 수준으로 퇴행했다는 의미다.

'치매'의 세부적인 어원과 뜻을 봐도, 치매 환자를 비하하거나 굉장히 부정적인 모습으로 바라보게끔 만들 수 있다. 후천적인 문제로 치매에 걸리는데도,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이같은 문제에 따라 우리 정부는 10여년 전부터 '치매'를 다른 용어로 대체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다른 한자문화권 국가인 대만, 일본, 홍콩, 중국은 진작에 ‘실지증(失智症)’, ‘인지증(認知症)’, ‘뇌퇴화증(腦退化症)’ 등으로 병명을 개정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보건복지위원회에는 현행법상 치매 용어 변경을 골자로 한 치매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건 계류돼 있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과 김성원 자유한국당(현재 국민의힘) 전 의원이 2017년 7월과 9월 대표발의한 법안들로, ‘치매’라는 법적 용어를 각각 ‘인지장애증’과 ‘인지저하증’으로 바꾸자는 내용이 골자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지난 9월,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1~2025)을 발표하면서, ‘치매’ 용어의 부정적 인식을 고려해 내년 2021년도에 ‘치매’ 용어 변경을 위한 국민 인식도 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복지부 올해 '치매' 용어 변경 위한 국민 인식도 조사 계획

치매를 대체할 새로운 용어는 객관적인 과학적 근거와 타당성을 지니면서, 현재의 부정적인 명칭에서 비롯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하고, 임상 현장과 실생활에서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치매’를 대체할 새로운 용어가 구체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치매를 인지증으로 대체하면서 일본 등 이미 개정을 완료한 나라에서 검토한 조건’, ‘간질을 뇌전증으로 변경하면서 사용한 기준’,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개정할 당시의 방침’, 그리고 ‘치매 용어 대체 개정법률안에 반영한 원칙’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내 치매 환자 100만 시대를 코 앞에두고, 현 정부은 이제서야 '치매국가책임제'를 통한 국가 차원의 치매 관리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하지만, 정작 치매 환자와 가족들은 '치매'라는 병명에 대한 사회적인 부정적 인식 탓에 마음 편히 수면위로 올라오지 못 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팩트경제신문>과 통화에 "이제 '치매'는 우리 사회에 흔히 보이는 질병이 되었다"며 "하지만 병명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에 치매 환자들과 가족들은 쉽사리 진단 및 치료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이어 "치매 병명 개정을 통해 병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꾸고, 환자와 가족이 보다 더 편하게 치매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고령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 1위는 ‘치매’다. 명확한 예방이나 치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노인 4명 중 1명은 치매에 걸린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만큼,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한 앞으로 치매 환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치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인식 때문에 치매라는 질환을 꺼리고 무작정 숨기려고만 하다가 병을 키운다. 이런 부분은 '치매'라는 명칭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고, 실제 생활 속에서도 잘 기억을 못 하는 친구에게 “너 치매 걸렸냐”라는 말을 흔히 비속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치매를 앓는 환자나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이 이에 대해 안다면 더욱 큰 아픔이 될 것이다. 정부는 올해, 국민 인식도 조사를 시작으로 다시 한번 치매 명칭 변경을 추진할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한편, 지난 2017년 6월 도쿄에선 흥미로운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간판이 달린 음식점인데, 여섯 명의 치매 노인이 음식 서빙을 담당했다.

햄버거를 주문하면 만두가 나오고 오렌지주스를 주문하면 콜라가 나오기도 했지만 손님들은 “주문과 달라도 맛만 있으면 된다”며 흔쾌히 넘어간다. 일본 전역에서는 ’오렌지 살롱‘이라 불리는 치매 카페 수백 곳이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치매 환자들이 한 달에 2번 직접 일하며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일명 ’사랑방‘이다.

일본의 치매 환자들은 눈치 안보고 사회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이는 치매 환자에게 있어 생활고립감을 덜게 하고, 사회적인 연결망을 확인해주는 자리가 된다. 사회가 나서서 인식을 바꿔주면 치매 환자와 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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