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성 “지자체 추진 디지털 성범죄 모니터링 사업, ‘행정적 유행’ 우려”
서울시 이어 인천·대전, 경상남도, 경기·부산 등 지자체 사업 추진 활발 “지원단 여성주의 관점 교육·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 대한 대책 부족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가 최근 지자체 사이에서 불법촬영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 시민 모니터링단 사업을 우후죽순으로 벌이는 것에 대해 “하나의 ‘행정적 유행’처럼 번지는 양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28일 배포한 입장문에서 “한사성이 만났던 유포 피해 경험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피해촬영물이 조금이라도 더 적은 사람에게 노출되기를 원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한사성에 따르면 서울시에 이어 인천시, 대전시는 모니터링 사업을 추진 중이며, 경상남도 경우 실직 및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 사업과 함께 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와 부산시는 디지털 성범죄 대응 방책으로 삭제 지원 및 모니터링을 제시한 상태다.
이에 대해 “공적 차원으로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근절에 힘쓰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유포와 소비로 가해가 이뤄지는 사이버 성폭력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시민이 직접 피해 촬영물을 조사하는 방식이 과연 적합한 대응인지 의문이 든다”고 언급했다.
한사성은 △시민 모니터링단 사업의 경우 지원자의 여성주의 관점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점 △지원자가 피해촬영물을 모니터링할 때 수반될 수 있는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에 대처할 방안이 명확하지 않은 점 등을 문제로 꼽았다.
사이버 성폭력, 특히 피해 촬영물 유포의 경우 여성 신체를 소비하는 ‘시청’을 통해 이뤄지는 범죄이므로 이를 모니터링할 때 여성주의 관점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지원자에게 제보 건당 금액을 제공하거나 일자리 사업과 연결해 진행하는 모습은 사이버 성폭력 근절보다 각 지자체의 사업 진행이 우선이라는 주객전도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모니터링과 삭제 지원은 피해자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공적 권리인데, 이것이 개개인의 영리 목적으로 정책화돼가는 양상은 공공삭제지원이 있기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사성은 지자체들이 삭제 지원은 완벽할 수 없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삭제지원은 신고 시 해당 사이트를 차단하거나 삭제 권한을 가진 플랫폼 요청자에게 삭제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삭제된다고 해도 온라인 공간 특성상 해당 촬영물이 언제 다시 유포될지 짐작이 불가능하단 문제가 있다.
이들은 “삭제 지원은 피해 촬영물의 영원한 제거가 아니며 피해가 일어났을 때 대처하는 사후적 조치”라며 “이런 사업을 민간에 일임하고 있는 지자체들은 사이버 성폭력의 본질과 특성은 과연 이해하고 있나”라고 반문했다.
또 “선제적인 플랫폼 모니터링은 분명 필요하지만, 사이버 성폭력 피해 지원은 영상물을 삭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피해 경험자가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한사성은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은 피해촬영물 모니터링은 훈련된 인력에 의해 이뤄질 수 있도록 공적 시스템화하면서 사이버 성폭력 근절을 함께 이야기할 공론장으로 시민을 이끄는 것”이라며 “나날이 거대화될 뿐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이버 성폭력은 국가 개입 없이는 근절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정부와 지자체가 하루 빨리 사이버 성폭력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폭력의 기저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 궁극적인 정책 비전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