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디지털화폐 부정적 인식 바뀌나···8월부터 2년간 모의실험 시작

상용화 계획 없어···연구 결과 나와야 도입여부 결정 은행회피 현상, 예금 통한 자금조달 약화 우려 여전

2021-05-25     이상헌 기자
한국은행이 오는 8월부터 민간기업이 참가한 2년간의 디지털화폐(CBDC) 모의실험을 시작한다. 한국은행은 무조건적인 제도 도입을 전제로 하는 작업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의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변화하는 조짐이다. 오는 8월부터 민간기업이 참가한 2년간의 모의실험이 시작된다. 다만 무조건적인 제도 도입을 전제로 하는  작업은 아니라고 한은은 선을 긋고 있다.

25일 은행권에 따르면 한은이 현재 구상중인 CBDC는 기존 중앙은행 내 지준예치금이나 결제성 예금과는 별도로 중앙은행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직접 발행하는 새로운 전자적 형태의 화폐다.

CBDC는 기존의 암화화폐 보다는 안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현금처럼 지급 수단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중앙은행이 발급하기 때문에 밀수, 탈세, 돈세탁, 혹은 테러집단 활동 등 불법적인 활동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동전의 양면처럼 역기능도 존재한다. 사람들이 저축하는 디지털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손해라 느낀다면 금이나 비트코인 등 다른 대체자산으로 옮겨갈 수 있어서다. 특히 중앙은행이 재량적으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어 과잉발행 폐해가 심해질 수도 있다.

향후 2년간의 모의실험은 CBDC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한은은 먼저 가상 환경에서 CBDC가 화폐로서 제기능을 하는지 실험한 뒤 상용화 여부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한은은 지금까지 CBDC 발행이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김영식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2019년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상업은행의 요구불예금을 상당 부분 대체하면서 금융안정이 저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업은행의 요구불예금 유출과 함께 신용공급(대출)이 축소되고 대출금리는 상승할 우려가 컸다. 또 지급준비금 보유의 기회비용이 증대돼 지급준비율도 감소해, 은행들이 유동성 부족에 처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회피 현상이 발생해 은행이 전통적으로 해왔던 예금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렵게 된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은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로 대체된 요구불예금만큼 중앙은행이 상업은행에 대출하면 금융안정이 개선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모의실험 연구 용역 예산은 총 49억 6000만원으로 사업기간은 착수일로부터 10개월이다. 7월 중 연구용역 사업자가 결정된다. 이미 네이버, 카카오, LG CNS 등 쟁쟁한 IT 기업들이 입찰 참여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CBDC 모의실험은 2단계로 구분된다. 오는 12월까지 진행하는 1단계 실험에서는 가상공간(공공클라우드)에 CBDC 모의실험 환경을 분산원장 기술 기반으로 조성하고 CBDC 발행·유통·환수 등 기본기능에 대한 기술적 타당성 검증을 마친다.

 

CBDC 모의실험 환경(예시) /한국은행 제공                                                                                                                                                         * CBDC 원장을 기록‧관리하는 서버이며, 기존 거액결제시스템과는 별도로 설치하여 운영. 기존 거액결제시스템 참가기관이 노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음

한은이 CBDC를 제조해 발행 전까지 하드웨어 전자지갑에 보관했다가 참가기관이 CBDC 발행을 요청하면 해당 기관의 전자지갑으로 제조된 CBDC를 전송해 발행하는 방식이다.

참가기관은 이용자를 위한 소액결제용 전자지갑을 발급하고, 이용자가 보유한 은행예금을 CBDC로 교환하거나 보유한 CBDC를 은행예금으로 전환하는 기능을 구현하게 된다. 유희준 한은 금융결제국 반장은 "현금이 유통되는 방법과 거의 유사하게 만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유 반장은 "모의실험 연구를 통해 가상공간에 분산원장 기술 등을 활용한 CBDC 모의실험 환경을 구현하고, CBDC의 활용성과 제반 업무의 정상 동작 여부를 실험하고자 한다"면서 "특정 IT 기업이나 민간 디지털화폐 등에 종속되지 않도록 오픈소스 기반으로 플랫폼을 조성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내년에 시작하는 2단계 실험에서는 국가간 송금, 디지털자산 구매, 오프라인 결제 등 CBDC 유통 업무 확장 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모의 실험은 연구 차원이며, 당장 CBDC 상용화 계획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