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언박싱] ‘초선들의 반란’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
김웅 이어 김은혜 의원도 출마 선언···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젊은 주자’ 3인방 형성 전당대회, 영남 중진 4명 vs 비영남 중진 3명 vs 초선·청년 3명 구도로 압축 국힘 문제, 의회 기득권층의 권력 안주···청년세대 현실정치에 대한 분노와 닿아있어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6월 11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출마를 선언했거나 검토 중인 주자만 10명에 달합니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주요 관전 포인트는 초선들의 반란입니다. 14일 김은혜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김웅 의원에 이 두 번째 초선 당권주자가 탄생했습니다. 장외의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신성’으로 분류됩니다. 이에 따라 차기 당대표 선거는 영남 중진 4명(주호영 조경태 조해진 윤영석)과 비 영남 중진 3명(나경원 홍문표 권영세), 초선·청년 3명(김웅 김은혜 이준석)의 구도로 굳어지는 양상입니다. 이들 중 본 경선에 올라갈 주자는 4명으로 압축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당권 경쟁이 친문과 비문의 대결 양상이었다면 국민의힘은 중진과 초선의 세대 전쟁으로 압축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당권이 계파 간 정체성을 둘러싼 전쟁이었다면 국민의힘은 나이와 경륜이 주요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당권 경쟁은 4선급 이상의 ‘올드보이’들이 나와 흥행을 그리 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는 선거 초반 초선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면서 결과를 차치하고 국민들의 흥미를 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서열과 선수를 중시하던 국민의힘에 가히 초선 전성시대가 열리는 것 같습니다.
먼저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초선들의 면면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초선은 김웅 의원입니다. 1970년생인 김 의원은 전남 순천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검경 수사권조정 법안 국회 통과에 반발하여 사표를 제출하고 21대 총선에 출마하고 당선되어 서울 송파구 갑 지역의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에 의해 정치에 입문하였기 때문에 정치 계파로는 유승민계로 분류됩니다. 일각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이 김웅 의원을 내세워 당을 접수하려 든다”며 그의 배후를 경계하고 있지만, 김 의원의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김 의원에 이어 당 대표 도전을 선언한 이는 김은혜 의원입니다. 1971년생인 김 의원은 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거쳐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외신담당 제1부대변인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21대 총선 때 국회의원(성남 분당 갑)이 됐습니다. 2020년 6월 1일 출범했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대변인으로 활약해 김종인 전 위원장과 가깝습니다. 이밖에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해 보수정당에 영입돼 10년 동안 보수세력의 이슈파이터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당 대표가 되면 대선 선대위원장으로 김종인 전 위원장을 모셔오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웅 김은혜 이준석 등의 ‘젊은 주자 3인방’은 모두 김종인 전 위원장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이들 가운데 한 명이 당 대표가 될 경우 국민의힘 세력 판도도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식상한 영남주류 논쟁보다 과거와 미래의 세대 간 대결이 전당대회 흥행에서 훨씬 유리한 측면이 있다”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초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체적으로 상세히 보도하는 것도 초선들이 중진들을 꺾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주자들의 약진과 여론이 이에 호응하면서 당 대표에 출마한 중진 그룹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진들의 방어 논리는 “이번 당대표는 대선 관리형 리더로 대선을 치러본 경륜 있는 후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중진들의 호소에는 쇄신에 대한 절박함이나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들은 “젊은 주자들이 어떻게 대선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겠는가”라며 그들의 불안정성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이번에 당 대표 경쟁에 나서는 ‘안정감 있고 경륜 있는’ 중진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이 선수만 쌓아왔지 실제로 보수야당의 발전과 당의 쇄신을 위해서 어떤 희생과 헌신을 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 국민의힘의 가장 큰 문제는 오랫동안 유지돼온 의회 기득권의 권력 안주입니다. 나이와 선수를 떠나 정치력과 정책으로 경쟁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주호영 조해진 윤영석 등의 영남기반 의원들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된 안전한 곳에서 의회 기득권을 지금까지 누리며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았던 온실 속의 화초들입니다. 조경태는 의원 배지를 위해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이적’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나경원은 패스트트랙 전쟁의 패장으로 지난 21대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현재 중진 당권주자들 가운데 당에 쇄신을 주문했던 ‘쓴소리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과거 민주당의 조순형 의원처럼 7선을 쌓으면서도 당내 현안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냈던 ‘소신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종로에 출마해 당선되고 나서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에 다시 출마하는 등 쇄신과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의회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았던 것이 대통령에까지 오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 당 대표에 출마한 중진들 가운데 조순형 노무현 같은 소신파나 쇄신파는 없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오로지 공천을 받기 위해 주류에 영합하며 선수만 차곡차곡 쌓아왔던 허울만 중진인 정치인들입니다.
청년세대들이 현실정치에 분노하는 것은 피 터져라 경쟁하지 않고 ‘금수저’ 기득권으로 편안하게 권력을 유지해나가는 기성세대의 불공정한 모습 때문입니다. 국민의힘은 그 기득권 세력의 대표적인 집합체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도 현실안주 기득권 세력이 경륜과 나이를 앞세우며 또 다시 그들만의 권력 배턴 터치를 하려고 합니다. 초선 당 대표로 대선에서 패배하는 것이 중진 대표로 당의 강철 기득권이 유지되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습니다. 국민을 외면하고 오로지 그들만의 권력놀이에 빠져 있는 기득권의 쇠사슬만은 끊을 수 있으니까요.
성기노 전 일요신문 정치부장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창원고와 한양대,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석사(언론학)를 마치고 일요신문과 에너지경제 등에서 주로 정치 분야를 취재했다. 모 정치인의 언론특보로도 활동하며 정치현장도 경험한 바 있다. 2016년 인터넷신문 피처링(www.featuring.co.kr)을 창간해서 대표를 맡고 있다. 플러스정치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정치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시민주권정치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주소는 newser@naver.co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