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권의 세상을 읽는 안목]
'최선'이란 말 속에 이미 한계 내포
덤비는 마음엔 ‘최선’의 기준 없어 

요즘 MZ세대들과 많은 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삶'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 열심히 살아봤자 어려운 상황은 변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도 금수저 출신과 가진 자들이 유리한 환경이다. 웬만큼 잘해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체념도 한몫하고 있다.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거대한 파도만 보고 노 젓는 일을 멈춘다면 결국 거친 풍랑 속에 휩쓸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픽사베이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거대한 파도만 보고 노 젓는 일을 멈춘다면 결국 거친 풍랑 속에 휩쓸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픽사베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지면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파도만을 보고 노 젓는 일을 멈춘다면 결국 거친 풍랑 속에 휩쓸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항로도 없이 떠다니는 삶은 당장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미래는 비참하다.

필자는 그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망했다"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 봤다. 여러 차례 최선을 다해도 실패하면 실의에 빠진다. 결국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길을 포기하고 적당한 일상을 보낸다. 고군분투할 필요가 없는 평범한 삶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크게 꽃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인물인데 절망감에 사로잡혀 스스로 꿈과 목표를 포기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은지 모르고 사는 젊은이들이 매우 많다. 사실 청년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도 자신의 적성에 맞게 직장이나 진로를 정한 사람이 드물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직장에서 마치 천직처럼 출퇴근을 반복하는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시기를 놓치고 만 사람들이다. 

'최선을 다해봤자 소용없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나 망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흔하게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보증 수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범위까지 노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기 스스로가 정해놓은 한도라는 것이 내재된 것이다. 그 한계만큼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험생은 밤 12시까지 공부하는 게 최선이지만 부모가 봤을 때는 새벽 2시까지가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최선'이라고 해도 자신이 설정한 한계 속에 갇히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하는 말을 들으면 그를 비판적으로 본다. 충분히 더 참고 인내할 수 있는데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최선을 다했으나 안 됐다'고 자기합리화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은 궁색한 변명이 되기도 한다. 최선이라는 단어 속에는 노력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독(毒)이 들어 있다.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될 때까지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사람은 인생에서 시련이 나타나도 기어코 정상을 오른다. /픽사베이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될 때까지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사람은 인생에서 시련이 나타나도 기어코 정상을 오른다. /픽사베이

종종 어려운 난제를 피하지 않고 기어이 뚫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기준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될 때까지 하는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 속해도 인정받고 산다. 무슨 직업을 가져도 기본 이상을 이뤄내는 인물로 소문이 난다. 이런 유형 중에 성공의 씨앗을 지닌 관상이 많다. 어떻게든 뚫으려고 덤비는 사람들은 관상부터 남다르다. 속이 꽉 차 있기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필자는 이런 사람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 설령 당장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하더라도 강인한 의지와 단단한 기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목표가 생기면 또다시 뚫으려고 덤빈다. 결국 어디든 뚫어 버리고 만다. 오롯이 본인이 갖고 있는 꿈을 이루는 씨앗이며 성공의 자질이다.

한계를 정해두지 않은 집념은 최선을 다했다는 말과 차원이 다른 힘을 지니고 있다. 어느 분야든 상관없이 저력을 발휘한다. 요즘 아이들이 즐겨하는 단순한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에서 1등을 하고 싶은데 못 이기면 밤을 새서라도 1등을 하는 아이가 있다. 최선을 다한 게 아니라 기어이 될 때까지 한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 부모들은 이런 자녀를 혼낸다. 게임만 한다고 걱정도 태산처럼 크다. 그러나 안목(眼目)있는 부모라면 이런 자식을 다르게 대해야 한다. 밤새도록 게임했다고 혼내지 말고, 날이 밝으면 1등 한 것을 칭찬해줘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려는 승부욕과 근성 자체를 존중해 줘야 한다. 결국 이 집념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인생의 큰 목표, 큰 꿈으로 가는 길목에서 중요한 디딤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응축된 이 잠재력은 어떤 어려움과 난관을 만나더라도 기어코 뚫어버리는 에너지가 된다.

물론 타고난 천재들은 죽어라 노력하지 않아도 목표를 달성한다. 그것 또한 중요한 가치다. 이런 천재들에게는 노력을 적게 했다고 크게 나무랄 필요는 없다. 적게 노력해도 쉽게 부자 되고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세상에는 천재보다 평범한 범인(凡人)이 훨씬 많다. 천재적인 재능이 부족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를 맛보려면 무엇이든지 한 번은 뚫어봐야 한다. 엉덩이에 종기 날 때까지 앉아서 공부해 본 사람은 설령 전교 1등을 못한다고 해도 심력(心力)이 달라진다. 

'최선을 다한다'는 개념은 자기설정이 강하게 개입된다. 사람들마다 다른 역량을 지닌 것처럼 최선의 기준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될 때까지 덤비는 마음가짐에는 최선이라는 기준이 없다. 이것이 바로 수적석천(水滴石穿)의 자세다. 

혹자는 이런 사람들을 보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더라도 자신을 오롯이 불살라본 사람은 관상의 기색(氣色)이 다르다. 1000도가 넘는 불에 단련된 강철처럼 단단한 기운을 지니게 된다. 또한 뜨거운 불길 속을 한 번이라도 들어갔다 나온 사람은 삶의 철학이 묵직하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백재권 사이버한국외국어대 겸임교수

어렸을 때부터 자연의 섭리와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명상과 기(氣) 수련에 매진했다. 대구한의대학교 풍수지리학 석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 박사를 취득했고, 교육학 박사를 수료했다. 중앙일보에 2년간 《백재권의 관상·풍수》를 연재했고, 네이버 오디오클립에 《백재권의 관상과 지혜》를 92회 연재했다. 2018년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신문사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의 요청으로 김정은의 관상에 대해 인터뷰했다. KBS, SBS, 채널A, MBN, 동아일보, 한국일보, 연합뉴스 등 다수 언론과 신문에 관상·풍수 전문가로서 출연 및 기고했다. 저서로는 『동물관상으로 사람의 운명을 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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