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 패밀리 40년 게이트(2)] 1990년 육영재단 분규후 박 대통령과 '단교'...아버지 별세도 안알려

▲ 최순실씨는 지난 1994년 우먼센스 8월호에서 '최민희'라는 가명으로 단독 인터뷰를 했다. /사진제공=우먼센스

'여성경제신문'은 자매지인 '우먼센스'가 지난 1990년 12월호, 1993년 11월호, 1994년 8월호에서 보도한 최태민(1994년 사망)·최순실 단독 인터뷰 및 주변 인물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 씨 부녀간 40년 인연을 5회에 걸쳐 되짚어본다. 최태민 씨는 국정을 뒤흔든 메가톤급 게이트의 장본인 최순실 씨의 부친으로 당시 기사 내용을 반추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에 집착하는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의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최순실(60·개명 후 최서원)씨가 지난 1994년 우먼센스와 '최민희'라는 가명으로 단독 인터뷰를 했다. 최근 비선실세 파문으로 독일에서 잠적중인 최씨가 세계일보와 현지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까지 '유일한 공개적 인터뷰'였다.

최 씨는 제정 러시아 국정을 제멋대로 주물러 제국의 몰락을 부추긴 요승(妖僧) '라스푸틴'에 비견되는 부친 최태민씨가 그해 5월1일 협심증으로 사망한지 3개월여 만에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작고한 부친에 대한 갖가지 소문들에 대한 입장을 간략하게 밝혔다. 그는 인터뷰 당시 서울 영동에서 9년째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 최순실씨는 1994년 우먼센스와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 서울 영동에서 9년째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진찍기를 극구 거부하며 얼굴 측면만 보이는 이 사진을 건네 주었다. 최근 독일현지에서 세계일보가 최씨와 인터뷰를 할때도 그녀는 얼굴 측면 촬영만 허락했다. /사진제공=우먼센스

최 씨는 박 대통령을 대학 1학년 때인 1976년에 처음 대면했다고 말했다

"그때 홍사단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거기 참가한 적이 있죠. 직접 만나 본 것은 얼마 안 돼요. 계속해서 지켜보았는데 참 깨끗한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흐트러짐이 없고, 욕심도 없어요. 게다가 물러설 줄도 아는 분입니다. 아버님도 같은 생각이셨던 것 같아요."

인터뷰 당시 최 씨는 부친과 박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루머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 말은 하지 말죠. 마음 같아서는 조목조목 사실을 밝히고 싶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가 당사자도 아니고 또 자칫 제가 한 말이 박 이사장님(최 씨는 박 대통령을 이사장으로 호칭했다)에게 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박 이사장님께서 말씀하신다면 몰라도 제가 말하기엔 아직 때가 이릅니다."

최 씨는 "속 시원하게 밝히지 못하는 사정을 이해해 달라"며 입을 다물었다. 대신 6장 분량의 심경고백서를 내놓았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사망에 따른 자신의 심경과 아버지를 비난했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가득 담겼다.

▲ 국정농단 의혹에 휩싸인 최순실씨가 지난 26일 오후 독일 헤센주 한 호텔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왼쪽) 최씨는 이날 얼굴 측면 사진 촬영만 허락했다. 나머지 두장은 그녀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에 담겨 있는 최씨의 사진. /사진제공=세계일보·JTBC

최태민 씨의 장례는 평범한 가족장으로 치러졌는데 당시 부친의 죽음을 박 대통령에게도 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1990년 육영재단 분규가 생기기 직전 그곳을 나온 후 박 이사장과 연락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당신 때문에 박 이사장이 큰 고통을 당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겁니다."

당시 언론은 최태민씨의 사인을 심장마비 등으로 보도했으나 최 씨는 그가 협심증으로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사인은)협심증이었어요. 옛날 말로 홧병이지요. 예전부터 혈압이 높으셨어요. 그런데다 육영재단 분규로 일을 중단하고 집에만 계시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가만 놔두지 않았어요. 특히 일부 언론이 좀 심하게 아버님을 몰아쳤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홧병이 생겼고…."

최태민 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 4개월 동안은 아무 것도 못하고 신병치료에만 전념했다고 했다. 영동세브란스병원과 순천향병원을 오가며 통원치료도 하고 열흘씩 입원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최태민 씨는 죽기 직전 유언을 남겼다. 딸 최 씨는 "당신(최태민)을 둘러싼 갖가지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 받은 게 미안하다고 했어요. 죽음을 앞둔 순간에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많이 미안했었었다구요. 특히 당신 때문에 어머니가 말 못할 고통을 당했다는 점을 가장 회한스럽게 생각했어요."라고 회고했다.

최 씨는 아버지의 생애를 낱낱이 풀어내며 연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1912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셨어요. 형제가 3~4명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모두 돌아가셨대요. 혼자서 월남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생애는 친척도 없는 쓸쓸한 것이었을 겁니다."

항간에서 떠도는 부친의 친일 의혹에 대해선 단호하게 부인했다.

▲ 최순실씨는 1994년 우먼센스와의 인터뷰 당시 6장 분량의 심경고백서를 보여줬다. 여기에는 아버지 최태민씨의 사망에 따른 자신의 심경과 아버지를 비난했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가득 담겼다. /사진제공=우먼센스

"할아버지(최윤성‧90년 독립 유공훈장 받음)가 독립운동 자금책이었는데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었답니다. 독립운동을 하신 할아버지 때문에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이미 재산이 탕진된 상태였다고 했어요. 아버님이 일제 때 일본 순사로 근무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정부가 훈장을 줬겠어요?"

유복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낸 최태민씨는 이후 사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한다.

▲ 1994년 5월에 숨진 최태민씨의 생전 모습. 이 사진은 그가 죽기전에 촬영한 가장 최근 사진중 하나다. /사진제공=우먼센스

최 씨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에 지금의 기상대(서울 서대문구) 부근에 정원이 있는 2층 양옥집에서 살았는데 기사가 딸린 자가용을 탔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아버지 사업은 꽤 잘 됐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최 씨는 육영재단 사유화 논란 등 최태민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아버지께서 청렴하고 정직하게만 살았다고 강변하진 않겠어요. 당신도 인간이니까 보이지 않는 실수를 하셨겠지요. 하지만 아버지를 둘러 싼 각종 모함과 뜬소문이 지나쳐도 보통 지나친 게 아닙니다. 다른 건 몰라도 돈이나 권력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27일 국제 폭로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주한 미국대사관이 지난 2007년 "최태민이 과거 박근혜 후보를 지배했으며, 최태민의 자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본국에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는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선을 펼칠 때다.

보고서는 "카리스마가 있는 고 최태민씨는 인격 형성기에 박근혜 후보의 심신(body and soul)을 완전히 지배했다(had complete control)"며 "박 후보의 반대 세력들은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부른다"고 했다.

라스푸틴은 황태자의 병을 기도로 고친다며 국정에 개입해 러시아 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요승(妖僧)이다.

최 씨와 박 대통령의 두터운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해 보인다. 비선실세 파문 이후 가진 세계일보와의 독일 현지 인터뷰에서 최 씨는 "박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이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박 대통령에게 폐를 끼친 것은 정말 잘못했다"라고 말해 40여 년 동안 이어진 인연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

또 "박 대통령이 훌륭한 분이고 나라만 위하는 분인데 심적으로 물의를 끼쳐드려 사과드리고 싶다"는 등 대부분의 국정농단 의혹은 인정하지 않은 채 박 대통령을 걱정하는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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